'닥터 스트레인지' 2편의 부제 '대혼돈의 멀티버스'(In The Multiverse of Madness)가 영화에 영감을 준 고딕 공포소설의 대가 H. 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광기의 산맥'(At the Mountains of Madness)에서 따왔다는 데서부터 이미 이전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영화들과 다른 길을 갈 것이란 것을 예고한 것인지 모른다. MCU 첫 호러 장르를 내세운 속편은 B급 컬트 호러의 대가 샘 레이미 감독의 인장으로 가득 찬 작품이 됐다.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린다. 그렇게 대혼돈이 시작되며 닥터 스트레인지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우게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스 2')는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의 멀티버스 속,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사상 최초로 끝없이 펼쳐지는 차원의 균열과 뒤엉킨 시공간을 그린 슈퍼 내추럴 스릴러 블록버스터다. 무엇보다 '스파이더맨' 3부작으로 널리 알려진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 MCU 안에서 '호러' 장르로 제작된 첫 영화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샘 레이미 감독을 MCU 첫 호러의 감독으로 선택했다는 것 역시 '닥스 2'가 그럭저럭 호러의 맛만 살짝 내는 수준이 아니라 작가주의적인 면이 강하리라는 신호였다. 빙의, 좀비, 대혼돈의 멀티버스, 흑마법서 다크홀드 등 모든 것이 샘 레이미 감독에게 적격인 아이템이며 그의 특·장점을 살리기에 충분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덕분에 시각적이고 자극적이며 또한 흥미롭고 실험적인 MCU 영화로 완성됐다.
물론 제임스 건 감독이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도 자신의 개성을 잘 살렸지만 그들의 영화가 MCU와 자신의 개성 사이에서 대략 중간 지점에 설 것을 타협한 것처럼 보였다면, '닥스 2'는 보다 샘 레이미의 개성이 드러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MCU 영화이기 전에 '샘 레이미의 영화'라는 것을 강렬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블 데드' 시리즈를 통해 특유의 슬랩스틱 유머를 가미하며 공포와 유머 사이, 장르와 장르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줄 아는 감독임을 보여줬던 만큼 이번 영화 곳곳에도 슬랩스틱과 유머, 특유의 공포 스타일이 담겨 있다.
촉수 괴물, 악마 등의 모습은 '닥스 2'가 감독의 뿌리인 공포 영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괴물과의 싸움, 괴물을 처치하는 과정 속 기이하게 웃긴 모습들은 매우 감독답다. 감독은 자신의 시그니처 비주얼을 담아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는데, 특히 좀비 버전 닥스와 '이블 데드' 대표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블 데드' 시리즈나 '드래그 미 투 헬' 등 그의 공포 영화를 봤고 또 기억하는 이들에게 영화 곳곳에는 마치 이스터 에그처럼 감독이 남긴 그의 선명한 발자국을 발견하는 재미가 존재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만큼이나 샘 레이미 영화의 멀티버스가 담긴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 안팎의 멀티버스가 '닥스 2' 하나에 담겨있는 셈이다.
주류와 비주류 문화 모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감독의 코믹스적인 요소도 빛난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 Op. 67 운명'이나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악보 속 음표들을 이용한 닥터 스트레인지와 또 다른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결 장면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디졸브, 아이리스 인 앤 아웃 등 고전적인 장면 전환 방식도 등장하는데, 클래식을 현대 영화, 그것도 히어로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와 다양한 분위기와 재미를 이어 나가고 있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이블 데드' 시리즈나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공과 가까운 사이의 빌런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인간적 고뇌와 영웅으로서의 책임감을 깨우치며 '인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이번 영화에서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친분이 있는 완다가 그의 최대 적으로 등장한다. 감독 영화 속 빌런은 늘 어떠한 사연이 숨어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영화는 각자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고, 비뚤어진 사랑 방식으로 인해 타인에게 아픔을 안겼던 두 사람이 어떻게 각자의 고통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와중에 돋보이는 인물은 완다다. MCU 세계관 안에서 얼핏 보였던 완다의 이야기와 심리가 디즈니+ '완다비전'을 통해 깊어진 데 이어, '닥스 2'에서는 슬픔과 트라우마가 물리적으로도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완다는 그동안 어벤져스 멤버로서 보여준 능력 역시 뛰어나지만 세계관 속 최강의 마법사인 스칼렛 위치로서의 활약은 제대로 보이지 못했는데, '닥스 2'를 통해 스칼렛 위치가 왜 최강인지 그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리적인 대결 속 심리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던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는 극한으로 내딛는 상황 속에서 아프게, 그러나 매우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지닌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통해 안팎의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주인공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도 제공한다.
결국 멀티버스를 통해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나의 어두운 면을 물리적으로 마주하고, 돌아보고, 이를 통해 상대에게 손을 건네는 히어로로 각성하게 됐다. 모든 걸 혼자 통제하거나, 홀로 감당하려 했던 이들이 엄청난 대혼돈의 시간을 겪고 성숙해진 것이다. 성숙해진 것은 둘만이 아니다. LGBTQ(다양한 성 정체성)의 대표성을 띠는 인물인 아메리카 차베즈 역시 대혼돈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 또 하나의 재미는 카메오다. 샘 레이미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다 카메오로 늘 함께했던 절친 브루스 캠벨이 이번에도 중요한 카메오로 등장한다. 영화의 신스틸러 중 한 명이자 두 번째 쿠키에 등장하는 브루스 캠벨은 '닥스 2'를 너무나도 샘 레이미 감독 영화답게, 매우 깔끔하게 영화를 마무리하는 중책을 맡았다.
'닥스 2'의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의 사연, 캐릭터 간의 관계를 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완다비전' '로키' '왓 이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블 데드' 시리즈, '드래그 미 투 헬' 등 감독의 전작을 본다면 '닥스 2'가 가진 재미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126분 상영, 5월 4일 전 세계 동시 개봉, 쿠키 2개 있음,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