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지난 두 달 외교 성적표는 별로 신통치 않을 것 같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야심찬 비전에도 불구하고 성과보다는 오히려 잡음이 많았다.
대미 정책협의단은 바이든 대통령은커녕 국무장관조차 만나지 못해 푸대접 논란이 일었다. 윤 당선인의 외국대사 접견이나 차관보급 인사와의 '사적 만남'도 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선인 신분으로서 사실상의 공식 외교활동을 수행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차제에 관행 아닌 관행처럼 굳어진 '당선인 외교'의 기준을 생각해볼 필요도 제기된다.
대미 정책협의단 '문전박대' 논란…"아직도 특사?" 시대착오 비판도 제기
윤 당선인은 지난달 특사 성격의 정책협의단을 미국과 일본에 차례로 파견했다. 대미 협의단은 4선 박진 의원을 단장으로 당선인 친서를 휴대하고 갔지만 으레 예상됐던 고위층과의 면담은 불발됐다.
역대 정부의 대미특사 또는 정책협의단이 대통령이나 부통령, 최소한 국무장관은 만나고 돌아왔던 것과 사뭇 달랐기에 여당에선 '문전박대'라는 실소가 나왔다.
성과 여부를 떠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외국에 특사(정책협의단)를 보내는 관행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특사외교'는 남북한 같은 특수상황이나 정통성이 취약한 독재정권의 산물이라는 문제의식에서다.
우리나라도 민주화 이후에는 가능한 한 일반적 외교 경로를 중시해왔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는 '반미주의' 오해를 풀기위한 고육책으로 대미특사를 파견했고 이후 관례화 됐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는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이던 고 정두언 전 의원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특사외교를 비판했다. 그는 정 전 의원에게 대미특사는 공연히 문제만 일으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은 '주변 4강에 모두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로 오히려 대상을 확대했다.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갑자기 중국특사로 간 배경이다. 이 전 대사는 "1강이 4강으로 확대됐으니 혹 떼려다 혹 3개 더 붙인 셈이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도 "대통령 당선인이 특사를 보내는 것은 개인적으로 들어보지 못했다"며 시대착오적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만 부지런히 특사를 보낼 뿐 외국 특사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과거 왕조시대의 책봉이나 조공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사 접견도 외교상례 벗어나…차관보급 성김과 '사적 만남'도 도마 위
윤 당선인의 외국 대사 접견도 격식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그는 주한 미국, 중국, 일본 등 핵심 이웃국가 뿐 아니라 영국, 독일, 호주, 우크라이나 대사까지 두루 접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문제가 없고 오히려 활발한 외교행보로 비춰질 수 있지만 외교가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대사는 최고 외교사절로서 해당 국가를 대표하긴 하지만 주재국 국가원수를 만나는 일은 부임 후 신임장 제출 때 외에는 드물다. 그것도 보통은 여러 국가의 신임 대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다.
일각에선 취임 전 당선인 신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선인으로서의 권한도 그만큼 제한돼야 한다. 권한도 없이 사실상 외교행위를 하는 것은 법률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본 대사와의 접견은 이튿날 일본 정부가 영토‧역사 왜곡 교과서를 발표함으로써 뒤통수를 맞았다. 일본 측의 연례적 '도발 스케줄'이 항상 그 무렵에 있어왔음에도 최악의 시점을 택한 것이다.
윤 당선인의 이런 '격의 없는' 외교행보는 급기야 미국 정부의 차관보급인 성김 대북특별대표와의 만찬회동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사적 만남'이라 하더라도 이를 곱게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일선 외교관들로선 차기 대통령까지 만나며 '체급'인 커진 카운터파트를 상대하는 게 더 버거워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번 회동 사실은 외교부나 차기 장관 후보자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10여일만에 '베테랑' 바이든과 진검승부…'중추국가' 전략은 아직 미진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미국 유력 언론에 경쟁적으로 기고문을 싣는 것도 격상된 국력을 감안하면 이제는 구태의 영역이다. 여기에는 이재명 전 경기도 지사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윤 당선인으로선 결과적으로 스스로 입지를 좁힌 셈이 됐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세미나에서 "(미국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이 (미국 언론에) 글을 보낸 것은 봤지만 후보가 나의 입장을 지지해달라며 글을 보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역대 정부들은 그래도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비핵개방3000' '동북아균형자론' 등 대외정책을 일찌감치 세우고 대비했다. 이에 비해 차기 정부는 아직도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추상적 전략 수준에 머물러있다.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외교 베테랑' 바이든 대통령을 '초보운전' 윤 당선인이 어떻게 상대할지 벌써 관심이 집중된다.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소셜미디어에 '사드 추가 배치'라는 둔탁한 6자 구호로 외교를 하는 식이라면 매우 곤란하다. 관록의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사드 문제에 신중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그만큼 엄중한 현실을 반영한다.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