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3일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 '디시 네트워크'(DISH Network)의 대규모 5G(세대)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북한산 작전' 등 네트워크를 활용한 협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 나온다.
이번 수주는 삼성전자의 미국 내 5G 통신장비 공급 중 역대 두번째 규모다. 두 회사는 정확한 수주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1조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디시 네트워크의 미국 5G 전국망 구축을 위한 △5G 가상화 기지국(virtualized Radio Access Network, vRAN) △다중 입출력 기지국(Massive MIMO radio)을 포함한 라디오 제품 등 다양한 통신장비를 공급할 예정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0년 9월 미국 1위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과 7조9천억원 규모의 5G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국 통신장비 역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삼성전자는 미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디시 네트워크의 대규모 5G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됨에 따라 세계 최대 통신 시장인 미국 내 점유율을 확대하고 핵심 공급사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전경훈 사장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글로벌 상용 역량이 집약된 5G 가상화 기지국은 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며 "이번 디시와의 협력은 이런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디시 네트워크 존 스위링가(John Swieringa) 최고운영책임자(사장)는 "삼성전자의 5G 가상화 기지국과 차세대 통신 기술력은 디시의 5G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예정"이라며 "디시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통해 고객들에게 더욱 우수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1조원대 수주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리더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5G 네트워크 장비 영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통신장비 사업은 계약 규모가 크고, 장기간 계약이 대부분이다. 또한 주요 기간망으로 사회 인프라 성격을 띠고 있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약속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디시 네트워크 창업자 찰리 어건 회장은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았다. 당초 월요일에 이 부회장과 짧은 미팅을 하기로 약속했으나 하루 전인 일요일에 이 부회장이 등산인 취미인 찰리 회장에게 북한산 동반 산행을 제안했다.
어건 회장이 본사가 위치한 미국 콜로라도주의 해발 약 43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올랐고 킬리만자로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세계의 고산 지역을 등반할 정도로 전문가급 실력을 갖춘 등산 애호가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일요일 오전 직접 차량을 운전해 어건 회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태우고 북한산까지 단둘이 이동했다. 당일 등산은 오전 11시 반부터 약 5시간가량 수행원 없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일상의 이야기를 비롯해 삼성과 디시의 협력 강화방안까지 폭넓은 분야를 두루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행을 계기로 신뢰 관계가 쌓였고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지으며 이번 수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20년 버라이즌과의 5G 장비 계약, 지난해 일본 NTT 도코모와의 통신장비 계약 당시에도 각 통신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협상을 진척시켰다.
특히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 CEO와는 오랜 시간 친분을 쌓아왔고,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 때도 둘이 만나 어깨동무를 하며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 자녀들의 결혼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 2018년 12월과 2019년 3월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인도 최대 통신사인 릴라이언스 지오는 현재 전국 LTE 네트워크에 100% 삼성 기지국을 쓰고 있다.
이 부회장은 5G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전담 조직 구성,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등을 직접 지휘하는 것은 물론 5G 이후 차세대 통신 분야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9년 5월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 통신연구센터를 설립해 6G 선행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며, 2020년 7월엔 '6G 백서'를 통해 차세대 6G 이동통신 비전을 제시했다.
이 부회장은 "통신도 백신만큼 중요한 인프라로서 통신과 백신 비슷하게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아쉬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6G도 내부적으로 2년 전부터 팀을 둬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