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인사들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대한 온전한 손실보상'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1호 공약과 현실적 부담 사이에서 진땀을 빼는 기류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된다면 기존 정부안과는 별개로 즉시 (피해업체별) 600만 원을 추가해 최대 1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약집에는 이와 관련해 "50조 원 이상의 재정자금을 확보해 정당하고 온전한 손실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소상공인·소기업 551만개사의 2019년 대비 지난 2년 동안 입은 손실을 54조 원으로 파악하고, 피해 정도에 따른 '차등 지원' 방안을 내놓자 '일괄 지원'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는 논란이 뒤따랐다. 아울러 인수위가 여태까지 7차례에 걸쳐 지원된 재난지원금 총액이 31조 6천억 원 규모라는 점도 언급함으로써 새 정부의 손실보상 지원액은 22조원 규모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반발 기류가 번지자 인수위는 지난달 30일 "당선인은 소상공인들과의 약속 그대로 (올해 정부가 추경을 통해 이미 지원을 하기로 한 16조 9천억 원을 제외한) 33조 1천억 원 이상을 취임 즉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며 "일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지원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새 정부의 추경안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시장에선 이같은 인수위의 메시지 등을 고려할 때 그 규모가 최소 30조 원은 넘어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다. 방역조치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피해는 보상해야 마땅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처럼 시중에 대규모로 돈이 풀리면 가뜩이나 고(高)물가 압박에 시름하는 우리 경제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이런 시각과 맞물려 제기된다.
신한금융투자 안재균 연구원은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피해가 막심한 소상공인 중심의 취약계층 보호가 절실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당장 추경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추경은 당초 공약했던 50조 원보다 줄여도 30조 원 이상 역시 역대급에 속한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시중 통화량을 증가시켜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추경 편성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한국은행(한은)의 통화정책과 방향성이 엇갈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신임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적어도 1~2년은 물가 상승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며 기준금리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추경) 총량이 커서 거시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당연히 정책 당국과 얘기해서 한은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규모 추경의 파급효과가 향후 통화정책 등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새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최대한 추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적자 국채발행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쪽에선 시장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은 시장 금리를 상승시키는 요소가 된다. 이는 기업과 가계의 이자 상환부담으로 연결된다"며 "결국 추경엔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과, 금리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측면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경 이후 그 두 가지 측면 중에 어떤 면이 더 부각될지는 불확실하다"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측면이 더 강하게 나타나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폭이 가팔라질 것이고, 억제하는 측면이 더 부각되면 한은 입장에선 금리인상 관련 속도조절을 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추경 재원조달 방안과 규모에 따라 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세밀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경 문제를 놓고 공약 이행이라는 과제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 후보자는 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둘러싼 공약파기 논란이 청문회장에서 도마에 오르자 "지금은 온전한 손실보상과 관련해 검토 중"이라며 "보상방안이 확정되면 당초 당선인이 공약한 부분에 상응하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원 액수 등에 대해선 말을 아끼며 신중모드를 유지한 셈이다. 추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는 "대규모 추경이 물가와 금리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국고채 발행은 가장 후순위로 두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