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실외 마스크'가 해제되는 등 일상회복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트 오미크론' 관련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만 2년여 간 코로나19에 대응하며 축적된 시행착오를 토대로 새로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의료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재 정부가 2026년 완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중앙감염병병원이 '궁극의 해결책'처럼 간주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5천억 원을 기부하며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됐던 병원 설립은 기획재정부의 예산 적정성 재검토가 밀리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K-방역, 성공적?…"의료대응체계 파트는 NO"
일선에서 한 명의 확진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분투해온 경기도의료원 임승관 안성병원장은 2일 국립중앙의료원이 주최한 '코로나 이후, 감염병 대응체계 개혁 왜 필요한가' 포럼에서 새삼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K-방역은 성공했는가?"3T 전략(검사·추적·치료)이 유효했던 코로나19 발생 초기는 긍정적이었을지 모르나, 오미크론 파고를 겪은 지금은 '아니다'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임 원장이 힘주어 지적한 대목은 정책 영역에서의 실패다. "(거리두기 등) K-방역이 특히 자랑스러워하는 비(非)약물적 중재, 즉 NPI(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는 매우 우수한 성과를 보였으나 의료체계(Healthcare System)를 관리·조정하고, 자원을 분배하며 재배치하는 부분에선 부족함이 많았다."
그는 정부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체계를 2년 넘게 유지했던 이유를 '팬데믹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찾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이주 문제라든지, 백신 접종 전후의 상황이 달라진 것처럼 전체적인 상황이 계속 변화하는데 유행 초반의 정책을 중후반까지 계속 쓰는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청도 대남병원 등 요양병원에서의 집단감염이 똑같은 양상으로 반복된 점,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만삭의 확진 산모가 헬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건너가 아이를 낳아야 했던 일도 정책과 현장의 '엇박자'로 벌어졌다고 봤다.
중앙감염병병원 관건은 '건물' 아닌 '내실 다지기'
임 원장은 공공 의료기관의 확충이 절실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하면서도 코로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국가가 쉽게 동원 가능한 의료기관은 공공병원뿐이라는 권력관계 증명"이라고 짚었다.앞으로의 감염병 대응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대응모델을 기반으로 해야 하기에 "고도의 감염병전문병원이 몇 개 더 생긴다 해서 국민건강이 지켜질 것인가, 의 문제"라며 "감염병 전문 요양원이 있다고 나머지 요양시설들이 팬데믹으로부터 안전해지진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도화된 시설에서 안전하게 감염병을 진료하는 것만이 재난시기 중앙감염병병원 역할의 전부라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추후 세워질 중앙감염병병원이 '전문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일반 의료계와 정부를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익성과 동시에 의료서비스 측면에서 질적 우수성이 담보돼야 하고, 개별적 주장이 가능한 독립성과 함께 국가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내세웠다. 감염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공공병원이란 라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내실을 다지는 데 있다는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임준 공공의료본부장도 "팬데믹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환자)규모가 있다고 하면 이를 염두에 두고 의료체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고 민간을 동원해야 하나, 란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상당히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대응과 방역대응이 긴밀히 연결돼야 하는데 의료대응이 방역에 종속된 문제점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의료시스템 가동이 원활치 않다 보니 전체 확진자 수를 줄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문제 의식이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입원증가 △비효율적 의료자원의 소모 △입원 및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적시·적정 치료 불가 △비(非)코로나 환자의 진료 차질 등 부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임 본부장은 질병관리청이 주축인 중앙방역대책본부 중심의 수직적 방역체계는 유지하되 중앙감염병병원이 의료대응에서의 거버넌스를 주도해야 된다고 제언했다. 동원 가능한 인력 풀을 관리하는 문제부터 진료역량과 자원(병상·인력·장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운영하는 문제, 자원 배분 및 활용기준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 등을 구체적인 수행 업무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감염병 대응 의료체계의 권한과 역할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제도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염병 대응, 각 과 '유기적 협력' 필수…"母병원 키워야"
아울러 전문가들은 모(母)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감염병병원이 기능적으로 매끄럽게 연계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봤다. 평소에는 중앙감염병병원이 '개원 휴업' 상태로 있다가 감염병 위기가 닥쳤을 때 갑자기 제 기능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같은 맥락에서 서울시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방지환 교수는 더 날선 지적을 내놨다. 방 교수는 일각에서 중앙감염병병원을 서울대병원에 위탁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두고 "감염병병원을 따로 지어서 다른 데 위탁하거나 이것만 똑 떼어서 짓는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며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지만 중증 감염병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감염내과나 호흡기내과만으로는 진료가 불가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 다수는 합병증이 생겨 타 과(科)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라는 취지다.
또한 "중증환자들은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달아야 하는데, 원래 흉부외과에서 심장수술을 할 때 많이 쓰는 기구다. 평소에 그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많이 해서 장비를 잘 튜닝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감염병병원 부지로 최종 결정된 서울 중구 방산동 부지가 다소 '협소'한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방 교수는 "국립중앙의료원이 모(母)병원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장기적 리더십 등 외 중요한 것이 공간 문제다. 올망졸망 작은 규모로 하다 보면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예산 타당성을 따지고 있는데 감염병(대응)은 사실 전혀 비용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가덕도 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는 면제하면서 이 부분은 예타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감염병병원은) 전쟁 '연습'에 돈을 많이 들이는 군대와 똑같다"며 "감염병 대응은 모든 면에서 신속성이 중요하다"고 정부의 기민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박향 공공보건정책관(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인 2015년 서류상으로 이미 진행됐었다"면서도 "중앙감염병병원 터를 방산동 부지로 결정한 것은 2020년 7월로 코로나가 이미 시작됐던 시기"라고 일부 지적을 시인했다.
다만 "중앙감염병병원을 단독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모(母)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의 현대화 사업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진행 중"이라며 "이달 말쯤 되면 기부금 예산 중 감염병병원에 어느 정도를 쓰고 국가예산을 쓸지 등 총 사업비가 책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 발굴과 환경문제 등을 논의하면 행정절차 상 2개월 안에는 설계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라며 "저희도 거버넌스를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일지 정립해나가려 한다. 감염병병원의 행정·재정적 문제는 절차대로 하되 내용적인 부분은 설계과정 등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