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활용에서 '친원전'을 주장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소형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사업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자력 관련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진행에 눈치를 봤던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실용화에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다만 윤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대선 당시 SMR이 근시간 내 대안이 될 것처럼 선전한 것과는 달리, 현실에서 SMR이 활용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앞다퉈 SMR 진출 나서는 기업들
GS에너지와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삼성물산은 지난 26일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SMR 발전소 건설·운영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기술을 토대로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기자재를 공급하고, 삼성물산이 원전을 시공, GS건설이 원전 발전을 맡는 식으로 협업하는 것이다.
SK도 해외 SMR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다. 투자 대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6년 설립한 SMR 선도기업 테라파워 등이 거론된다. 삼성중공업은 원자력 설비를 바다에 띄우는 해상 SMR 시장 진출을 목표로 관련 기술력이 있는 덴마크 시보그(Seaborg)사와 협약을 맺었다.
기업들의 앞다툰 SMR 사업 진출은 지난달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인으로 결정된 후 본격화됐다. 탈원전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 당선인은 '원전 강국 부활'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며 SMR 등 차세대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달군 SMR, 2030년 지나야 시장 열릴 듯
이번 대선 내내 언급된 것은 물론이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쏠린 관심의 열기만 보면 SMR은 당장 세계 에너지 시장 구조를 바꿀 만한 '꿈의 기술'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소 10년 이상 투자와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단계다.
SMR의 발전용량은 300MW 미만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전 중인 원전 24기의 용량은 대부분 1000MW이고 가장 최근 만들어진 신고리 3·4호기는 1400MW 규모로, SMR의 용량은 대형 원전의 3분의1에서 10분의1 수준이다.
기존 원전과 구성이 같고 규모만 작은 소형원전은 현재도 만들 수 있다. 다만 발전원가를 낮추려면 원전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대형 원전이 건설돼 왔다. 여기서 SMR의 핵심은 '모듈' 방식으로, 규모를 줄여도 발전원가를 낮출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대형 원전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가압기 사이를 배관으로 연결해야 해 배관에서 방사선이 유출될 우려가 있지만, 모듈원전은 이 핵심 기관들이 원자로 안에 일체형으로 들어가 있다. 대형 원전은 같은 방식의 원자로여도 부지나 주변 환경에 따라 설계·구성·건설을 달리해야 하지만, SMR은 공장 대량생산을 통한 비용절감이 가능한 구조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70종 이상의 SMR이 개발 중이다. 가압경수로 등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3세대 원자로가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물 이외의 냉각제를 쓰는 4세대 원자로인 (초)고온가스로, 고속중성자로(소듐냉각고속로), 용융염로 등이 개발 중이다.
상용화 여부만 따지자면 러시아는 이미 2020년부터 세계 최초로 해상 부유식 SMR을 가동하고 있다. 다만 35MW급 원자로 2기인데다 3세대 원전인 경수로 방식이다. 지상에서 대형 원전 1기를 대체할 만한 발전량을 제공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SMR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진적 기술이 적용된 원전 단지는 아직 조성된 적이 없다.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은 2026년, 중국 정부는 2025년 운전을 목표로 각각 SMR을 개발 중이나 203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SMR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0년 최초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SMR 설계인가를 취득한 미국 뉴스케일파워는 2029년 아이다호주(州)에 60MW급 SMR 12기로 이뤄진 원전 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다만 이들도 모두 수냉각 SMR이다.
액체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 Sodium-Cooled Fast Reactor)나 불소, 염소 화합물의 용융염(고체가 열에 의해 액화된 상태에 있는 염)을 냉각제로 쓰는 용융염로(MSR, Molten Salt Reactor) 방식 등 선진 SMR의 개발은 아직 더딘 상황이다.
SMR, 정말로 싸고 안전하고 탄소중립적인가?
원전 업계에서 말하는 SMR의 장점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대형 원전에 비해 초기 재원 조달 부담이 크지 않고, 설치 부지의 제약이나 건설 기간 문제도 적다. 핵연료 다발수가 적어 방사선 영향이 줄어들고 고유의 안전성 특성으로 사고완화에도 효과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대형 원전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저전원으로서 유연성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면, SMR은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정도로 제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화석에너지의 빈자리를 메꾸려면 신재생에너지와 협업이 가능한 SMR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같은 장점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 번째로 원전 업계의 주장처럼 대형 원전 1기에 대한 관리비용과 SMR 수십기에 대한 관리비용이 동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식적으로만 보면 1400MW 규모인 신고리 3호기를 대체하기 위해 100MW 규모 SMR이 14기 필요하다. 만약 이 SMR 단지에 대한 관리비용이 훨씬 크다면 발전단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SMR을 통해 현재 특정 지역에만 밀집된 원전을 분산하면서 에너지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큰 그림과도 맞지 않는 방식이다. 결국 비용 문제로 SMR 수십기를 한 군데 모은다면 또 다시 특정 지역이 원전의 위험을 감당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개발 중인 SMR 중 다수를 차지하는 수냉각 방식은 바다나 강 주변에 위치할 수밖에 없어 입지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 정부가 개발 중인 '혁신형 SMR'도 수냉각 방식으로, 지난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이 개발한 100MW급 일체형 원자로 '스마트(SMART)'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 중이다.
한편 새로 개발 중인 소듐냉각고속로 등 비경수로형 방식은 상대적으로 누출사고가 많았던 과거가 있어 기술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권에서 서울 한강 주변에 수십개의 SMR을 설치하겠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경제성에서도 안전 면에서도 특별한 이점이 없다면 굳이 SMR이어야 할 이유가 있나"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측면에서도 SMR이 대안인지에 대해 의문이 나온다. 지난 5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30년까지 전세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기술개발과 실증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SMR 상용화는 203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 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마저도 대형 원전에 비해 건축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2050 탄소중립의 도구로 SMR은 너무 늦은 해결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석탄발전소를 일부 대체하고 우주선이나 잠수함 등 대형 원전보다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SMR의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만능은 아니다"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 문제 역시 최근 SMR 논의를 공허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