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14명 가운데 6번째 무죄 확정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부장판사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28일 확정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던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밖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대한문 앞 집회 사건 판결문에서 논란이 될 표현을 삭제토록 한 혐의,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원정도박 사건을 약식명령 처리하도록 개입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1·2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임 전 부장판사가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를 했다"면서도 "수석부장판사에게는 재판 개입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선 재판부가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 임 전 부장판사로 인해 권리 행사에 방해를 받은 건 아니라는 취지다.
2심도 마찬가지로 임 전 부장판사에게는 다른 판사의 재판 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1심에서 지적한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2심에서는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로 수위가 낮춰졌다.
대법원도 이날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거나 직권남용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무죄를 유지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되면서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심판에도 넘겨졌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재판관 5대3 의견으로 이를 각하했다. 5인의 다수의견은 임 전 부장판사가 임기 만료로 퇴직한 이상 탄핵제도의 기능에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탄핵 심판 이후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월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를 열고 임 전 부장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12월에는 이태종 수원고법 부장판사에게 각각 무죄가 확정됐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