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검수완박'='부패완판'이라던 윤석열은 어디에?

檢, 민주당 칼끝만 노려보다…尹에 찔리자 '아연실색'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해 7월쯤이었다. 한 검찰 고위급 인사와 만나 이런 저런 현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인사는 돌연 테이블 위에 있던 신문 기사를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정치는 하더라도 원전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으실텐데…" 윤석열 당선인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면담한 뒤 "탈원전 방향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한 발언이 크게 실려 있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 월성 원전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 시작이 1개월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비슷한 시기 만났던 대전지검 관계자의 속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윤 당선인의 원전 발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따른 부담감을 감추지 않았다. "변호인측에서 전(前)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죄를 입증해도, 입증에 실패해도 정치권으로부터 욕을 먹을 사건이 돼버린 것이다. 사건 수사를 지시한 총장은 물러난 뒤 원전 이슈를 철저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소모했고, 뒤처리는 고스란히 후배 검사들 몫이었다.
 

민주당의 '검찰총장' 윤석열 집중포화…검찰도 치명타


윤 당선인과 검찰조직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전대미문의 과정 속에서 대중들은 윤 당선인과 검찰 조직이 한 몸처럼 움직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총장 임기 내내 윤 당선인을 바라보는 검찰조직의 시선은 오히려 차가웠다는 쪽이 다수 의견이다. 윤 당선인이 총장 부임 첫해 전례를 깨고 극단적인 자기 사람 챙기기 인사를 강행하면서 내부 반발을 야기한 것이 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채널A 사건, 라임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연이어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검찰총장을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렸지만 검찰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켰다.
 
총장과 검찰조직의 '어색한 동거'를 하나로 묶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윤 당선인이 아닌 추 전 장관이었다. 추 전 장관이 월성 1호기 수사에서 검찰총장 직무를 배제하고 총장직에서 쫓아내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서야 전국의 검사들이 집단 반발에 나서면서 총장편에 서기 시작했다.  
 
황진환 기자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윤석열 총장'을 모신 대가는 검찰이 오롯이 치러야 했다. 검찰 조직은 윤 당선인의 총장 부임 이후 대선 승리 때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당선인에게 쏟아진 여당의 정치적 집중포화에 고스란히 함께 노출되며 막대한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윤 당선인을 고립시키고 축출하기 위해 이뤄진 '친정부' 검사들의 전진 배치와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무리수가 반복되면서 유능한 검사들이 조직을 떠났고 조직 내부도 서로를 믿지 못하며 망가져갔다.
 

"설마 윤석열이?" 검수완박 여야 합의에 분노한 검찰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탄생으로 시련의 끝을 보나 했던 기대도 잠시, 오히려 최악의 위기가 닥쳐왔다. 지난 22일 공개된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을 야당인 국민의힘이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은 말을 잇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검수완박이 현실화 됐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야당이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혐의로 수년간 검찰에 시달려야 했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야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검찰 희생을 발판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당선인이 검찰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희망은 어이없을 정도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고위급 검찰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졌다"며 "당선인이 이렇게 빨리 정치인으로 탈바꿈하실지 몰랐다"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인수위에서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이 나오자 한 부장 검사는 "정말이냐"며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양측이 수용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황진환 기자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했다는 야당 주장에 대한 반응에서는 냉소마저 느껴진다. 지방에 근무하는 한 검사장은 "중수청이 설립될 때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벌었다는 야당 주장은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이 과반 넘게 얻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달 지방선거 결과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2년 뒤 상황까지 예상하시니 존경스러울 따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민형배 의원의 탈당으로 여론이 악화돼 여당이 궁지에 몰리던 상황에서 여야 합의가 검수완박의 숨통만 틔워줬다는 안타까움도 묻어나온다.

검찰 총수가 곧바로 대권에 도전하는 부적절한 선례에 입바른 소리 조차 내지 못했던 조직 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른 검찰 간부는 "당선인이 총장직을 그만 두고 곧바로 대권 도전에 나섰을 때에 내부망에 비판하는 목소리 한 마디를 찾기 힘들었다. 지금 조직이 그 후과를 철저히 치르고 있는 것"이라며 한탄했다.
 

검수완박 한 목소리 반대하던 윤석열·한동훈의 침묵


"검찰은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겨눠질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 시킨 합의에 침묵을 지켰다. 언론의 요구가 빗발치자 다음날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 없이 급하게 추가 입법이 되면 문제점들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잖은' 평가를 내놨을 뿐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황진환 기자

여야 합의 당일 "존중한다"던 논평을 내놓은 인수위는 이틀이 지난 24일 "당선인은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1분 1초가 아쉬워 동분서주하고 있는 검찰 분위기와 대조되는 차분한 화법이었다. 지난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며 "중수청 신설은 민주주의 퇴보이자 형사사법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 "부패완판(부패가 완전 판친다)"이라고 일갈했던 윤석열의 모습은 검찰 최대 위기 앞에서 깨끗이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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