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직자 범죄 檢수사 제외…정치인 '불체포' 모자라 '불수사'?
중재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부패와 경제범죄로 축소시킨 부분이다. 특히 검찰 직접 수사 대상에서 공직자와 선거 부분이 제외된 것이 눈에 띈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서 돈 공천 등 선거범죄 판칠 것"이라며 원색적인 비판도 검찰 내부망에 빗발쳤다.김후곤 대구지검장은 22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선거범죄는 시효문제, 선거운동의 복잡한 법리문제 등 어렵고 실수도 많은 범죄"라며 "선거를 코 앞에 앞두고 수사를 못하게 하면 그 혼란은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6월 지방선거에서 발생할 선거법 위반 사건이 당장 문제다. 이번 개정안은 중재 과정을 거쳐 유예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렸다지만 선거사범 수사 공백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개정안이 5월 초 공포되면 중재안의 유예기간에 따라 9월 초부터 법의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지방선거에서 발생할 선거법 위반 사건들이 선거운동 기간인 6월 전에 집중될 것을 고려한다면 대부분 공소시효인 11월 이전까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우리나라의 경우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는 6개월로,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편이다) 투표 하루 전날인 5월 31일 벌어진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약 3개월 뒤인 9월 초까지 검찰이 수사를 마치고 기소하지 못하면 중재안에 따라 경찰에 사건을 넘겨야 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11월 31일 전까지 수사를 마치고 다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기소가 가능하다. 지방선거는 기초·광역 자치단체장을 비롯해 지자체의원 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러지기 때문에 총선이나 대선에 비해 선거사범이 다수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초치기 수사'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지금까지 선거법 위반 사건은 검사들의 전유물이었다. 공안검사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경찰이) 미진한 상태에서 검찰로 송치할 경우 검찰은 뻔한 사건도 시간관계상 증거수집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혐의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 법안은 정치인만을 위한 법안일 뿐만 아니라 향후 부정선거 사건 수사를 할 수 없게 만든 법안"이라고 규탄했다.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가 주로 적용되는 공직자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동부지검이 수사에 착수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의 추가 수사도 경찰에 넘어가게 된다. 관련 기록만 수천에서 수만 건 되는 수사의 주체가 뒤바뀌게 된다.
한 지검장은 "정치인들이 불체포 특권도 모자라 불수사 특권까지 노린 법안"이라며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보라. 그 많은 인력을 두고도 1년에 한 건 기소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뿐만 아니라 변호사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이날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수사기능 폐지 법안 공청회'에서 "6대 범죄에 대한 (여야) 거래의 모습이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왜 이 부분에만 논의가 집중됐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참여연대 출신 양홍석 변호사는 SNS에서 "중재안을 보니 정치인들은 일반사건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자기들이 수사대상이 될 만한 것들에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완수사 남겼다지만…'일관성'·'동일성' 장벽에 가로막혀
중재안 4항도 법조계의 비판 대상이다. 4항은 검찰 시정조치 요구사건과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 등에 대해 당해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대폭 줄이는 대신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제한적으로 되살렸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현실을 도외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이라는 부분은 검찰의 보완수사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킬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예를 들어,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지적장애 여성의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피의자를 상해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을 경우 단일성·동일성을 규정한 조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상해와 성폭력 은 동일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성폭력 혐의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된다.
연쇄살인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라는 피해자가 발생한 살인사건 용의자를 경찰이 수사해 검찰에 송치했다면 검찰은 이제 A씨 살인사건에 대해서만 조사할 권한이 있다. 설사 조사 과정에서 B씨와 C씨 등을 살해한 정황이 발견된다 해도 수사망을 확대할 수 없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다. 검찰이 여죄를 추궁하려 들면 당장 변호인이 단일성과 동일성 원칙을 들어 수사를 거부하고 나설 수 있다. 설사 운좋게 여죄를 밝혀내 기소까지 간다해도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측 변호인이 수사과정에서 단일성과 동일성 원칙을 이유로 기소의 불법성을 주장하면 살인범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다.
재심사건 전문으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서 "'졸속'으로 인한 '혼란'이 우려된다"면서 "혐의가 인정돼 검찰로 송치된 사건에서 추가 혐의가 발견됨에도 '범죄의 단일성,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수사를 못 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는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한탄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송치된 사건에 대한 증거를 보완할 수도 없고, 통신사실확인조회나 출입국사실조회 역시 불가능해진다"고 비판했다.
與野 대치 푼 의장의 협상력? 졸속처리 위한 명분 쌓기
이번 중재안이 발표되자 정치권에서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협상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석이 나온다. 안건조정위 무력화를 위한 위장 탈당과 상임위원 사·보임까지 잇따랐고, 임시회 회기를 하루, 이틀로 쪼개는 '살라미 국회'까지 기정사실화 됐던 게 현실이다. 이같은 국면에서 박 의장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 '꼼수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개악안"이라는 노골적인 비판이 뒤따른다. 한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의장중재안은 위헌성은 해소되지 않고 행정부 산하 검찰조직 개편까지 손대는 등 기존 법안보다 더 악화된 개악안"이라고 했다. 또 특수부 인원 감축을 정한 것에 대해선 "대통령령을 의장이 언급하는 것은 크나큰 월권"이라고도 덧붙였다.
"임시국회 4월 중에 처리한다"고 시점을 못박은 것에 대해서도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5월 3일) 전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였다. 혹시라도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우려한 처사라는 해석이 중론이었다. 여야 합의를 거쳤다지만 5일 간의 숙려기간 역시 거치지 않을 예정이다. 이번 중재안 역시 '일단 통과부터 시키자'는 기존 방침은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검찰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서 "곳곳에 위헌 규정도 많고 실무상 혼란도 전혀 정리되지 않았는데 4월에 급히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