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공사 중단 이후 조합-시공단 대화도 중단
2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공사 중단 이후 조합과 시공단은 사실상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양측은 2020년 6월 시공단과 전임 조합 집행부가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해당 계약은 당초 1만 1106가구였던 규모를 1만 2032가구로 늘리고, 상가 공사까지 포함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2조 6708억 원이던 공사비를 2020년 3조 2294억 원으로 5586억 원 증액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대해 현 조합 집행부는 "(전임 조합 집행부가) 당시 고분양가 심사기준으로 2900만 원대 밖에 나오지 않는 일반분양가를 3550만 원이 나오는 것처럼 조합원들을 기망한 채로 공사비 증액 의결을 편취했다"며 "계약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합은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 계약에 대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시공단에는 공사비 확정을 위한 재검증을 요구했다.
반면 시공단은 당시 계약이 조합 총회 의결을 거쳤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은 만큼 문제가 없는데 조합이 공사의 근거가 되는 계약을 계속 부정하고 있다고 맞서 왔다. 조합이 이런 주장을 계속하는 한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대치한 끝에 15일 0시부터 공사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했다.
조합 "고급화 공사에 조합 요청 수용하면 증액 공사비 인정"
공사비 증액 계약을 두고 시공단과 마찰을 빚던 조합은 공사 중단 직전인 11일과 14일 '조건부 공사비 증액' 공문을 발송했다. 해당 공문은 조합이 공사 중단 전 보낸 마지막 공문이다.공문을 통해 조합은 연석회의를 열고 △지분에 계약을 도급제 계약으로 변경 △신규 계약서의 공사금액을 3조 2292억 원으로 하되, 계약서 작성 이후 공사비 검증 절차를 거쳐 산출된 금액을 기준으로 변경 △고급화 공사(특화 공사, 마감재 공사 등)는 조합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되 조합은 그로 인해 증가되는 비용을 추가 공사비로 지급 △합의 내용을 기반으로 최대한 빠른 시기에 일반분양해 기성공사비 정산 △합의 시 (시공사업단의)사업비 지원 재개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시공단은 △공사 변경 계약서의 유효성 인정 △추가 공사지연 방지를 위한 감리단의 자재 승인 근거자료 제공 △공사비 재검증 △공기 연장에 따른 추가 공사비 기발생 손실분 협의 △상가 대표 단체와 조합의 분쟁 종료 확인 등의 문제를 함께 협의하자며 확대회의를 역제안했다. 하지만 이후 조합이 자신들이 제안한 안건만 논의하자고 요구하며 협상이 결렬돼 공사중단에 나섰다는 것이 시공단의 설명이다.
시공단 "고급화 명분으로 특정 업체 사용 요구…신뢰 무너져"
공사 직전 주고받은 공문을 마지막으로 양측의 대화는 사실상 중단됐다. 공사 이후 지난 21일 특정 협력 업체 선정 요구를 사실상 철회하는 내용으로 해석되는 공문을 조합이 시공단에 보낸 것이 마지막이다. 해당 공문을 두고도 양측은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다.22일 시공단이 공개된 조합의 공문을 보면 조합은 △2011년 10월 20일 △2022년 3월 11일 △2022년 4월 5일에 15개 항목에 대해 마감자재와 업체 변경을 요구한다. 이런 내용이 공개되자 업계 일각에서 조합이 시공단의 하도급 업체 선정 권한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를 의식한 듯 조합은 21일 시공단에 공문을 보내 "지난 4월 5일 발송한 '주요 마감재, 자재 품목과 업체 지정 등에 대한 회신' 공문에 첨부된 '주요 마감재 자재 품목·업체' 내용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자재와 업체 목록이 공문 내용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조합 측이 뒤늦게 업체 선정 요구를 철회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1년 서울시가 제정해 발표한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를 보면 조합은 시공하는 공사와 관련해 어떤 이권개입이나 청탁을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마감재 선정 개입이 이런 조항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다. 조합과 시공단이 맺은 시공계약서에도 업체 선정은 시공단이 결정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이와 관련해 논란이 이어지자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 강정원 자문위원(계약법률TF팀장)은 21일 유뷰트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대부분의 재건축 현장에서 마감재 선택은 조합이 투표로 하고, (선택된 마감재를 납품할) 회사를 선정하는 것은 시공사가 입찰로 한다"며 "둔촌 주공도 그 절차를 따를 것이고 조합은 좋은 제품을 채용해달라는 것이지 (특정) 브랜드를 요구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합-시공단 모두 "상대 믿지 못하겠다"
조합이 앞서 발송한 공문 일부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제외하면 지난 15일 공사가 중단된 뒤 조합과 시공단은 공문을 포함한 일체 대화를 주고받지 않고 있다.파행의 배경을 두고 조합과 시공단은 모두 '신뢰문제'를 꼽고 있다. 시공단 관계자는 "증액 계약에 대한 무효 소송을 내고 공사비를 증액하겠다는 공문을 보내고, 16일 총회에서는 공사비 증액 계약 의결을 취소했다"며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조합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조합 강정원 자문위원도 '신뢰훼손'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그 책임은 시공단에 돌렸다. 강 자문위원은 "계약 절차에 문제가 많으니 계약서를 새로 쓰자는 것이고 조합이 공사비 증액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닌데 시공단이 협상테이블에서 할 이야기를 언론에서 하고 있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 다시 중재…조합-시공단 "협상테이블엔 앉겠다…다만"
양측이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일로를 이어가자 서울시가 다시 중재에 나서기로 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앞서 서울시는 약 10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지난달 중재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이에 따른 조합원들의 피해와 서울 공급가뭄 심화 등이 우려되자 서울시는 조합과 시공단에 협상테이블 마련 의사를 밝히며 양측에 관련 자료를 준비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조합과 시공단 모두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면 참석에 나선다고 밝혔다.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열의를 갖고 양측의 의견을 조율해보려고 했지만 (조합과 시공단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중재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우려했던) 모든 상황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파국을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중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의 이번 중재가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10여 차례의 서울시 중재에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합은 서울시의 중재와 별도로 공사 중단 장기화에 대한 시공단 계약 해지 검토는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조합 관계자는 "15일 0시부터 공사 중단이 이어지고 있는데 25일 0시 이후 바로 시공단 계약해지 조치 등에 바로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공단이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예고한 순서대로 이사회를 통해 (시공단 계약 해지 의결을 위한) 총회를 잡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공단이 변화의 조짐이 구체적으로 보인다면 이후 취할 조치에 유동성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