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안양 KGC인삼공사가 4강에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작년 6강에서 '3 대 빵'으로 광탈(광속 탈락)했기 때문에 이번에 복수를 한다는 마음으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2021-2022시즌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와 대구 한국가스공사 중 어느 팀이 6강을 뚫고 올라오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수원 kt의 간판 허훈이 자신있게 내놓은 답변이다.
이 같은 질문이 주어지면 혹시나 특정 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솔직한 답변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허훈은 달랐다. 솔직하고 당당한 성격 그대로 거침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허훈은 자신의 각오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코트에서 증명했다.
허훈은 21일 오후 경기도 서수원 칠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 4강 플레이오프 홈 1차전에서 28득점 6어시스트 활약으로 kt의 89대86 승리를 이끌었다.
허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정규리그 2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후 6강 경기들을 보면서 마치 이날만을 기다린 선수 같았다.
KGC인삼공사가 함준후-양희종-문성곤-오세근-대릴 먼로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업을 들고 나섰지만 허훈은 경기 시작과 함께 과감한 돌파로 득점 및 추가 자유투를 얻어내면서 팀 분위기를 살렸다.
KGC인삼공사는 허훈의 초반 활약을 경계했다. 허훈과 양홍석이 초반부터 폭발해 큰 점수차로 패했던 정규리그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훈을 상대로 과감하게 도움수비를 가는 장면이 여러차례 나왔다. 그때마다 허훈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듯이 차분하게 대응했다. 오른쪽 베이스라인 트랩을 뚫고 반대쪽에 비어있는 정성우에게 패스를 연결, 3점슛을 어시스트한 장면이 백미였다.
kt는 2쿼터 한때 KGC인삼공사에 8점 차로 끌려갔다. 하지만 허훈의 폭발적인 돌파가 이어지면서 흐름이 뒤집혔다.
허훈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2쿼터 막판 왼쪽 45도에서 동료들에게 모두 반대쪽으로 빠지라고 지시했다. 직접 1대1 아이솔레이션 공격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허훈은 기습적으로 3점을 던졌다. 공이 림을 통과한 순간 허훈은 자신감 넘치는 세리머니로 홈 팬을 열광에 빠뜨렸다.
kt는 전반을 52대47로 끝냈다. 전반전의 kt는 분명 설욕의 의지가 강했다.
서동철 kt 감독은 경기 전 "제러드 설린저를 앞세운 KGC인삼공사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서 우리가 정말 해보지도 못하고 탈락했는데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번에 갚아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의지도 강하고 응집력도 생겼다"고 말했다.
kt의 집중력은 후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기량발전상의 주인공 정성우의 3쿼터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정성우는 3점슛을 여러 차례 성공했고 득점 이상으로 화려했던 가로채기로 상대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정성우가 뛰어난 플레이를 할 때마다 허훈은 코트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kt는 3쿼터를 78대66으로 마쳤다.
하지만 KGC인삼공사는 매치업존 수비로 kt를 강하게 압박해 추격을 시작했다. kt는 고비 때마다 달아났다. 베테랑 김동욱은 KGC인삼공사가 5점 차로 추격한 4쿼터 2분57초 전 허훈의 어시스트를 받아 3점슛을 터트렸다.
KGC인삼공사는 먼로의 활약으로 종료 1분23초 전 점수차를 1점으로 좁혔다. kt는 87대86으로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이후 허훈이 돌파 과정에서 자유투를 얻어 2점을 뽑아냈다. 결정적인 점수였다. 양팀이 한 차례씩 야투 실패를 주고 받은 다음 동점을 노린 KGC인삼공사 전성현의 마지막 3점슛이 불발되면서 승패가 결정됐다.
외곽 수비의 핵 정성우는 16득점을 보탰다. 특히 3쿼터에 몰아넣은 그의 10득점은 kt가 주도권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