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지난 20일 CJ ENM 산하 채널 tvN '유퀴즈' 방송이었다. 현직 정치인 출연이 잦지 않은 '유퀴즈'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출연한 것.
윤 당선인은 이날 방송에서 출연 계기에 대해 "반은 참모들, 반은 내 의지"라며 "(참모진이) 국민들이 많이 보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 번 나가봐라' 해서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 출연 소식이 전해진 13일부터 '유퀴즈' 시청자 게시판은 들끓었다. 프로그램 취지와 맞지 않고, 예능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항의와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동안 정치인 이미지 개선에 예능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례가 많았던 탓이다. 급기야 일부 시청자들은 '유퀴즈' 폐지를 주장하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tvN은 당초 예정대로 '유퀴즈'를 정상 방송했다. 편성 연기 등 별다른 조치 없이 정면돌파를 택했다. 윤 대통령은 출연자 4명 중 1명으로 나와 20분 간 MC 유재석·조세호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음식 취향, 대통령 당선 소감 및 고민, 검사 시절 등 개인적인 주제가 오갔다.
대통령·총리도 '유퀴즈'에 거절? CJ ENM은 '말바꾸기'
문 대통령의 경우 21일 관련 내용을 담은 보도가 나왔고, 이에 CJ ENM 측은 언론을 통해 '사실무근에 오보'라며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청와대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직접 재반박에 나서면서 거짓말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탁 비서관은 이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윤 당선인의 출연 여부와는 별개로 청와대를 상대로 한 CJ의 거짓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지난해 4월과 그 이전에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청와대 이발사, 구두수선사, 조경담당자들의 프로그램 출연을 문의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때 제작진은 숙고 끝에 CJ 전략지원팀을 통해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다'는 요지로 거절 의사를 밝혀왔고, 우리는 제작진의 의사를 존중해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다"며 "당시 프로그램 담당자와 통화한 기록이 있고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가 (출연을 요청 받은 바 없다고 언론에 거짓말을 한 것은, 그 거짓말 자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리실은 지난해 10월쯤 코로나19 확산 상황과 관련해 국민과 소통할 방법을 찾던 중 김 총리의 '유퀴즈' 출연을 제안했지만, 결국 '프로그램 성격상 정치인 출연은 곤란하다'며 출연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이번에 CJ ENM 측은 또 다시 언론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만약 처음 언론에 밝힌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CJ ENM은 거짓 해명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 편향적' 꼬리표 어쩌나…CJ ENM 대표 이력까지 '도마 위'
하지만 윤 당선인처럼 가장 민감한 현안들이 얽힌 '국가원수급' 정치인을 조명한 적은 없다. 2018년부터 이어진 '유퀴즈' 역사상 이번 방송이 이례적·예외적인 것이다.
이제 '유퀴즈'의 공통 거절 사유로 알려진 '프로그램 성격과 취지'가 불과 1년 만에 왜 달라졌는지 의문이 생긴다. 동일한 기준이 아니었다면 '정치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유퀴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낸 결과 '공감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쌓아 올린 신뢰와 프로그램 취지마저 무색할 지경이 됐다.
'유퀴즈' 방송 채널 tvN과 종합 콘텐츠 기업 CJ ENM엔 더 큰 위기다. 보도 기능 없이 콘텐츠만으로 승부하는 CJ ENM은 '정치 편향' 꼬리표가 한 번 붙으면 스스로 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능, 드라마 등 콘텐츠들이 정치적 성향과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선 CJ ENM의 해명이 '사실'일 경우에만 갖은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0년 12월 취임한 CJ ENM 강호성 대표이사의 이력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프로필을 보면 검사 출신 법조인인 강 대표는 윤석열 당선인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고, 사법 연수원 1기 선배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1998년에는 윤 당선인과 함께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로 재직했다.
이에 따라 방송계 일각에서는 강 대표이사와 윤 당선인의 인연이 이번 출연 성사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추가적으로 불거진 각종 의혹과 관련해 '유퀴즈' 연출을 맡은 박근형 PD를 비롯해 CJ ENM 측에 답변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앞서 두 차례 정치인 출연을 거절한 게 사실이라면, '유퀴즈'의 결정은 옳았다. 이번에도 선례를 적용했으면 될 일이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는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은 아니었을까. 평범한 시민들의 창구와도 같았던 남다른 예능 '유퀴즈'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