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군인 간 성행위라도 서로 합의 하에 이뤄졌고 군 시설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군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새로운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군형법 92조의6항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중위와 B 상사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은 2016년 일과 시간이 끝난 뒤 군부대 밖 숙소에서 2차례에 걸쳐 상호 합의 하에 동성간 성행위를 했다. A씨는 B씨가 아닌 다른 남성 군인과 2016~2017년 영외지역 독신자 숙소에서 6차례에 걸쳐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조문대로라면 A씨와 B씨는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1심과 2심은 이 조항을 A씨와 B씨 사건에 적용해, 군부대 밖에서 상호간 합의 하에 이뤄진 행위라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A씨는 징역 4년에 집행유예 1년, B씨는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가 내려졌다. 2심도 같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동성 군인 사이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 군기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침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군형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규정은 2013년 개정되면서 '계간'이라는 단어가 '항문성교'라는 말로 바뀌었는데 '항문성교'는 동성이 아니라 이성 사이에도 가능한 성행위라는 점에서 "군형법상 항문성교는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군인이라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대법원의 기존 판례도 변경된다. 대법원은 이번에 문제가 된 군형법 92조6항에 대해 2008·2012년 "강제성 여부나 시간, 장소 등과 관계 없이 동성애 성행위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판단했었다.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현행 규정이 갖는 문언 의미를 넘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났다"라며 "별도의 입법 조치가 없는 한 동성 군인 간 성행위 자체를 처벌한다는 종전 해석을 유지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서로 합의한 성관계가 아니라 일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군기 등 법익을 침해할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된다고 선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