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초동)이나 선주문량이 수십만 장, 수백만 장 팔렸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여기에는 앨범을 필요 이상으로 사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사의 상술이 반영된다. 멤버별 포토카드를 마련해 무작위로 포함하고, 팬 사인회 응모권을 넣는다. 많이 사야만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거나, 팬 사인회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각종 음악방송과 시상식 성적의 중요 지표가 되는 만큼 판매량은 '다다익선'이라는 틀도 공고하다. 결국 팬들은 무리해서 앨범을 사고, 이는 고스란히 수치로 반영돼 기록이 된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K팝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친환경적 변화를 꾸준히 요구해 온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지구를 위한 K팝) 활동가들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하이브 사옥에 모였다. 기후 위기를 악화하고 쓰레기를 양산하는 실물 앨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앨범을 만들어 판매하는 '생산 주체'인 엔터테인먼트사에 직접 전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케이팝포플래닛은 3월 한 달 동안 전국의 K팝 팬들에게 쓰지 않는 '처치 곤란' 앨범을 받았다. 전국 제로 웨이스트 가게와 자연드림 매장 등에서 앨범을 수거했고, 총 8027장의 실물 앨범이 모였다. 활동가들은 기후 위기로 꿀벌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데서 착안해 꿀벌 의상을 입고, 팬들이 기부한 앨범을 재사용해 만든 조형물을 만들어 취재진 앞에 섰다. 조형물에는 "ART SHOULD NOT END UP HERE"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티스트들의 작품인 앨범이 이처럼 쓰레기로 버려져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실물 앨범을 여러 장 사게 부추기는 소속사 행태를 언급하며, "문제는 음반 생산과 유통 과정 전반에서 대량의 탄소가 배출돼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화석연료를 주원료로 한 플라스틱은 석유와 가스의 추출과 정제, 분해, 소각 전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또 패키지에 사용된 코팅지, 폴리염화비닐(PVC) 등은 재활용이 어려워 쓰레기를 양산한다"라고 꼬집었다.
케이팝포플래닛 이다연 활동가는 "1만 명이 넘는 전 세계 K팝 팬들이 실물 앨범 문화 개선을 비롯한 엔터사들의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면서 "2024년 유엔 플라스틱 규제 협약이 마련될 때까지 엔터사들은 친환경 앨범 선택지를 전면 도입하는 것부터 시작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3대 음악 레이블로 꼽히는 유니버설 뮤직·위너·소니는 지난해 음악 기후 협약(Music Climate Pact)에 동참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약속했다. △탄소 배출량 측정 협력 △소속 가수가 기후 문제에 목소리 낼 수 있게 지원 △음악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팬들과 소통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케이팝포플래닛은 팬들이 기부한 앨범을 모아 하이브 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SM·JYP·YG엔터테인먼트 등 타사 앨범은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지구의 날'인 22일에 각 사에 배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