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엑스맨 막는다는 민주당 '연어전술'[정알못]

[쉽게 풀어쓴 뉴스] 안건조정위
법사위 키맨 양향자 고심 엿보이자
민형배 탈당으로 무소속 대체하나
꼼수 계속되지만, 법안 추진은 계속

검증되지 않은 정보, 속칭 지라시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여의도 정치권을 교차합니다. 지난 19일 정치부 기자들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강타했던 그 메시지도 처음에는 그런 지라시 중 하나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좀 달랐습니다. 서신의 형식이나 문체가 자못 진지해 보였습니다. "제 정치인생이 끝나고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양심에 따르겠습니다"라는 식의, 감히 누가 흉내 내기 어려운 고심이 꾹꾹 눌러 써있더군요.

법사위 키맨의 변심?


서신의 골자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일명 검수완박 법안을 좀 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법행정의 일선에서 선량한 국민들이 고통받지 않을지 자신이 없다"는 소신이 담겼습니다.

양향자 의원 제공

특히 주목된 건 끝단에 작성자로 적힌 이름이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하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꽂은 '키맨'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무소속 의원이 왜 키맨이냐고요? 그건 국회법에 규정된 '안건조정위원회'라는 장치 때문입니다. 개념이 좀 복잡하지만 이걸 이해하시면 무릎을 탁 치실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여야의 수 싸움이 이 제도를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거든요.

안건조정위가 우리 국회법(제57조의2)에 도입된 건 지난 2012년, 일명 국회선진화법에서였습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제도)이라는 카드를 다수당에 쥐여주면서 소수당에 '충분한 논의'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였어요.

안건조정위는 특정 상임위원회에서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구성되며 최장 90일 동안 활동합니다. 여기에 조정위원으로 다수당 3명, 그 외 정당 3명이 들어가죠. 다만 6명 중 4명이 동의할 경우 조정위 자체를 끝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검수완박 법안(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되고 있죠. 법사위는 얼마 전까지 민주당 12명, 국민의힘 6명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를 요구할 경우 양당에서 3명씩 선임하면, 법안을 정권교체 이후까지 묶어둘 수 있었겠죠.

이를 대비하기 위해 민주당이 변칙 내지 꼼수 전략으로 검토한 게 바로 '사보임(선수 교체)'이었습니다.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 동의 하에 법사위 소속 박성준 의원을 빼고 이 자리에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투입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건조정위가 열리더라도 양 의원이 민주당 3명과 손잡으면 그냥 끝내버릴 수 있거든요.

사실 양 의원은 불미스러운 일로 지난해 탈당했지만, 원래는 뼛속 깊은 민주당원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안건조정위 종결을 위해 '무늬만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투입했다는 해석이 정치권 중론이었던 것도 그가 고향인 민주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것으로 예견됐기 때문입니다.

사보임 없이도 대체…민형배 탈당

민형배 의원. 윤창원 기자

이런 상황에서 양 의원 서신이 흘러나왔으니 민주당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겠죠? 우리 편인 줄 알고 모셔 왔는데 '엑스맨'이었다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박홍근 원내대표가 "양 의원 본인이 작성한 것 같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고 말한 뒤로는 애써 외면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민주당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복수의 원내지도부 관계자, 전략에 밝은 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단은 양향자 의원을 설득해서, 이탈을 막는 게 최선책이라고 합니다. 혹여 복당을 꾀하는 양 의원이 존재감을 과시하려 서신을 일부러 흘린 거라면 물밑 협상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얘기도 당내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설득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추가 사보임, 즉 교체한 선수를 다시 교체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죠. '말 안 듣는' 양향자 의원을 법사위에서 다시 빼버리고 그 자리에 민주당 출신 다른 무소속 의원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거죠.

민주당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 공천으로 비례대표 의원이 된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나 최근 국민의힘과 합당 과정에서 제명을 요구하고 있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 쪽에 이목이 쏠렸던 건 이 때문입니다. 당내 입장차가 뚜렷한 정의당 소속 의원들도 교체 후보군 중 하나로 민주당 일각에서 꼽혔습니다.

그런데 당장 더 유력하게는 '연어 전술'이 대안으로 거론됐습니다. 다른 당 사람을 자꾸 빌리면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을 테니 아예 자당 의원을 탈당시켜 양향자 의원을 대체하는 방법이 일각에서 언급됐습니다. 거사를 치른 뒤 복당으로, 연어처럼 다시 돌아오게 하자는 거죠.

연어 전술은 민주당에서 정무부대표를 맡고 있는 민형배 의원이 20일 오후 느닷없이 탈당하면서 특히 주목되고 있습니다. 민 의원은 애초 법사위 소속인 터라 굳이 사보임을 하지 않아도 소수당 몫 안건조정위원이 될 수 있습니다.

민형배 의원은 "정치하는 길에 들어선 뒤 처음으로 민주당을 떠난다"면서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냅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역할에 대비하려는 뜻입니다"라며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탰습니다.

결국 소수당의 '충분한 논의'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안건조정위를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일 신청했습니다. 민의원의 '연어전략'이 힘을 발휘할 상황을 만들어 둔 겁니다.

양향자 의원. 박종민 기자

글이 길어졌는데요. 결론은 양향자 의원이 엑스맨이란 비난을 감수하며 개인의 소신을 선택한다 해도, 그 자체로는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는 걸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국회법상 다수당의 지위가 아주 세거든요.

양향자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됐다"고 개탄했습니다.

물론 자꾸 이런 식으로 꼼수에 꼼수를 부르고, 절차적 정당성에 균열을 내서 여론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낼 순 있겠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의결 과정에 전략 싸움을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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