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계속 금리인상 필요, 속도는 조절"…'인플레 파이터' 자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첫 번째 임무는 본연의 임무인 물가 안정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처럼 '물가 잡기'를 자신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추가 기준금리 인상의 불가피성을 피력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시장 파급력이 상당한 기준금리의 방향을 명확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한 것이다.
 
다만 이 후보자는 경기 침체 우려를 감안해 '인상 속도'는 조절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도 동시에 강조하면서 시장 충격을 완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현 정부는 물론, 새 정부의 일부 정책에 대해서도 '소신 발언'을 내놓는 한편, 정부와의 소통 강화도 주된 과제로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물가상승은 1~2년 계속될 것…지금 금리 올려 관리해야"

 
이 후보자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적어도 1~2년은 물가 상승국면으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간 코로나19 극복 차원에서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돈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물가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위험 상황이 장기화 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실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관리 목표치인 2%대를 훌쩍 뛰어넘어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4%대를 돌파했다.
 
그는 가계부채 누적 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증가세가 일부 둔화됐다고 하지만, 그 수준이 높아 금융안정은 물론 성장에도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음을 울렸다.
 
서울 태평로 한국은행. 한국은행 제공

이 같은 위기 진단은 '추가 금리인상 불가피론'으로 이어졌다. 한은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이를 포함해 지난 8개월 사이 이미 한은은 0.25%포인트씩 네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는데, 더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한은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금리인상) 시그널(신호)을 미리 주지 않으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가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당 수준으로 증가한 가계부채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을 물어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리가 치솟으면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이 후보자는 "거시적으론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는 게 급선무"라고 답했다. 청문위원들이 "앞으로 계속 금리인상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자 이 후보자는 "성장의 문제가 없는 한 계속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성장 동력 훼손 않도록 인상 속도는 조절"

 
이런 기조를 놓고 "매파적"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지만 이 후보자는 '금리인상 속도 조절론'도 함께 제시했다. 이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부터 "성장 모멘텀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도 물가 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한 속도로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지만, 향후 역전될 경우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도 "우리나라는 성장률 측면에서 미국만큼 견실한 상황이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보다 조심스럽게 인상 속도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여지를 뒀다. 전체적으로 시장에 긴장 필요성을 상기시키면서도 갑작스런 충격이 가지 않도록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다.
 

新정부 대출완화·대규모 추경엔 '견제구'…"건강한 긴장관계 유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 후보자는 '고물가·가계부채 관리'를 중심에 두고 현 정부는 물론,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일부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새 정부의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 대출 규제 완화 기류에 대해선 정책 영향이 부정적이거나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경우 한은이 관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차원에서 검토되는 50조 원 추경 편성이 한은의 물가잡기 기조와 모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해당 추경은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미시적 정책이기에 불가피한 선별적 보상"이라며 일단 엇박자 논란은 피해갔다. 다만 "만약 (추경) 총량이 커서 거시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당연히 정책 당국과 얘기해서 한은도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새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기류에 대해서도 "모든 완화 정책이 한꺼번에 시행된다면 물가나 거시경제 상황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우회적으로 '견제구'를 던졌다.
 
이 후보자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의 질문에 "실패란 용어는 너무 강하다"면서도 "세제를 통해 특정 지역의 부동산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전제가 문제"라고 밝혔다. '강남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대책'을 두고 각론이 오가는 과정에선 "강남 지역 안정화를 정책 목표로 삼으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도 직언했다.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소신을 드러낸 이 후보자는 정부와의 소통 강화도 한은의 주요 과제로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는 "정부와는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소통하고 조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직무를 무난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별다른 충돌 없이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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