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김종필이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고 공동정부를 구성했을 때, 정부 각료의 비율은 7:6이었다. DJ쪽 추천 인물이 일곱, JP쪽 추천인물이 6명. 당초 약속했던 5:5의 비율이 대체로 지켜진 것이다.
'빨갱이'라는 이념적 굴레에 얽매어 있던 DJ로서는 정치적 스펙트럼은 완전히 다르지만 충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JP와의 합종연횡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기도 했다. 많은 국민들은 DJ의 개혁적인 정치를 기대했지만, JP라는 보수색채가 강렬한 정치세력과 같이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인물을 등용하고 보수적인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DJ는 여소야대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환경과 좌익이라는 편견을 넘어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대중문화개방, 의약분업실시 등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자신에게 씌워진 오해와 편견 그로 인한 한계를 자신의 역량으로 뛰어넘은 DJ는 그래서 지금도 존경 받는 정치인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병했다. 합병에 대한 단서조항은 여러 가지 있고, 일정 지분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사실상 국민의당이 흡수 통합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당 의석은 비례대표 3석이지만, 이 가운데 권은희 의원이 통합에 반대하며 제명을 요구하고 있어, 모두 합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두 당이 합쳐지면서 10년간 진행돼 온 안철수의 정치실험은 사실상 끝났다. 현재 여당인 민주당에 뿌리를 둔 안철수 위원장의 정치행보는 분당과 분열을 거듭했고, 결국 다당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의 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전격적으로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
국민의당 창당의 명분이 됐던 다당제 정치는 합당으로 사라졌고, 앞으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다시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국민의당의 흡수통합은 정의당의 쇠퇴와 맞물려 거대 양당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고 오히려 한국의 정치 수준을 퇴보시킨 사건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의당의 흡수통합은 DJP연합과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인수위원장을 맡아 새 정부의 조각과 국정 설계작업에 나섰지만, 안철수 위원장이 원하는 인물은 한 명도 내각에 합류하지 못했고, 새로 내놓기로 한 정책비전 역시 집무실 용산 이전 등 강력한 이슈에 묻혀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안 위원장은 이 문제로 직무 수행까지 거부했고, 윤석열 당선자와의 독대 끝에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인수위원회의 활동과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안 위원장의 의도나 의사대로 인수위가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안 위원장도 자신의 결근시위에 대해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합당 이후 안 위원장이 당내 지분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준석 대표와 합당 직전까지 여러 차례 대립했던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안 위원장의 세력 확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안철수 위원장에게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안 위원장으로서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선대위원장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의 제안이 오히려 견제로 비춰진다.
또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을 적지 않게 이번 지방선거에 내보내야 하고 나아가 당선까지 시켜야하는 부담도 있다. 선대위원장을 강권하는 이준석 대표는 물론 윤 당선인에게 가장 큰 신임을 받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 바 '윤핵관'은 가장 큰 산이자 뛰어넘기 쉽지 않은 세력이다.
가장 선명한 정치적 색채였던 다당제를 포기하면서까지 국민의당에 합류한 안 위원장은 이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이 시험대에서 떨어진다면 안 위원장의 정치생명은 다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 입지 확보를 위해 자신의 색깔을 탈색해 버린, 변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