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반대 근거로 최근 논란이 된 '계곡살인 사건'을 언급하면서 검·경의 신경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검찰이 "검수완박 상황이었다면 (경찰 수사만으론) 사건의 실체가 묻힐 뻔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공식 브리핑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실제 계곡살인 사건 수사 경과를 살펴보면 검찰과 경찰 모두 사건 초기 '부실수사'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검찰이 현재 상황만을 갖고 왜곡 해석해 검수완박의 반대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 일각에서는 검수완박 상황이었어도 사건 실체를 밝히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檢 "경찰 수사만으론 사건 묻힐 뻔" vs 警 "살인 혐의 우리가 밝혔다"
18일 경찰청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정례 간담회에서 '계곡살인 사건' 관련 질문에 대해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고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상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날 검찰에서 낸 입장문 내용을 적극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천지검은 "일산서부서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기소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장기간에 걸친 검찰 직접 수사활동을 전개한 결과 계획적 살인 범행을 입증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인천지검은 "경찰은 살인범에 대해 구속영장도 신청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등 경찰 수사만으로는 사건이 묻힐 뻔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자 경찰은 반박했다. 남 본부장은 "최초 가평경찰서에서는 변사자 부검, 통화내역 그리고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지만 명확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히고 송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계곡살인 사건의 수사 경과를 살펴보면 사건 초기 경찰과 검찰 모두 '부실수사'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발생해 당시 관할은 가평서였다. 가평서는 사건 발생 4개월 동안 수사를 했지만 구체적인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해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했다.
문제는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이라 이 사건이 검사의 지휘를 받았다는 점이다. 경찰이 여러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어 내사 종결하겠다'는 의견을 검찰에 보내면, 검사가 이를 직접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검찰도 당시 '부실 검토'를 한 셈이다.
이를 지휘했던 전주지검 안미현 검사(당시 의정부지검 검사)는 최근 본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는 계곡살인 사건 관련해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에 대해 의견대로 내사종결할 것을 지휘했다"며 "저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자 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묻힐 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이 사건은 보험사기를 의심한 보험회사로부터 돈을 받지 못한 피의자 이은해가 언론에 제보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와 함께 피해자 유족의 지인이 경찰에 추가 제보를 했고, 일산서부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경찰은 1년여간 수사한 끝에 이은해와 조현수의 살인 등 혐의를 입증했고,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檢 "직접수사로 계획적 살인 입증" vs 警 "보완수사 요청했으면 될 일"
사건을 넘겨받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피의자들 거주지 관할인 인천지검으로 사건을 이송했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2월쯤 형사2부 부장검사를 주축으로 7명의 전담수사팀을 두고 보완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관련자 30여명을 불러 추가 조사하고, 피의자들 주거지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피의자들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 등을 확보해 '살인미수' 정황을 추가로 포착했다고 한다. 2019년 2월 강원도 양양군의 한 펜션에서 이씨가 피해자에게 복어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여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과 같은 해 5월 용인 낚시터에서 피해자를 빠트려 살해하려 한 정황 등이다.
검찰은 "2차 살해 시도를 통해 피해자가 수영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피의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직접 수사를 통해 피해자를 보험이 만료되는 날 피의자들이 가평계곡으로 유인해 강제로 다이빙하도록 시킨 다음 주변에 있으면서 구해주지 않고 사망에 이르게 한 계획적 살인 범행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해석은 미묘하게 갈리는 모양새다. 경찰은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인 사안으로 현재 시스템에서 검·경이 각자 역할을 다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즉 경찰에서 이미 살인 혐의를 입증했고, 이를 넘겨 받은 검찰이 보완수사로 '살인 미수'라는 추가 혐의를 포착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경찰이 압수해 포렌식 했던 피의자들의 휴대폰을 검찰이 재차 압수해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복원함으로써 복어 독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이려 했던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는데 성공한 것"이라며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기소해 무죄 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부족 무혐의 처분을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직접수사를 안했으면 사건이 묻힐 뻔했다며 해당 사례가 검수완박의 대표적인 반대 근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 일각에서는 검수완박과 관계없이 검찰이 보완수사 요청을 제대로 했다면 경찰 단계에서 충분히 사건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오히려 검찰이 직접 수사에 욕심내다가 피의자를 놓치는 등 하마터면 미제 사건이 될 뻔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원래 수사는 검경이 협력해서 진행하는 게 기본이다. 아무리 경찰에 수사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장청구권이 검찰에 있는 상황이라 일선에서는 검사와 경찰관이 협력해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경찰이 완벽할 수 없으니 이를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라고 요청하는 게 검찰의 원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초 일산서부서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의정부지검에서 면밀하게 살펴본 뒤 증거가 부족한 부분은 보완수사하라고 경찰에 요청했었으면 될 일"이라며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사건을 인천지검으로 그냥 넘겨버린 것도 문제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1차 조사에서 결정적인 패(증거)를 까는 바람에 피의자들이 잠적하지 않았나"라며 "검찰이 놓친 피의자를 경찰에 협조를 요청해 결국 잡은 건데, 이런 부분들은 다 빠지고 검찰이 혐의를 추가로 포착했으니 검수완박의 반대 사례라고 주장하는 건 궤변"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천지검은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 "가평서 및 일산서부서는 인천지검에서 요청할 수 있는 경찰관서가 아니"라며 "당시로서는 검찰에 의한 직접 보완수사만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볼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