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19도에 달한 지난 15일 오후 3시경,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는 50명 남짓한 손님들이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고 얼음 음료를 들이켰다. 카페 직원은 일회용 잔에 컵 홀더 용도로 종이컵을 씌워 음료를 내줬다. 플라스틱 컵과 뚜껑, 종이컵, 빨대 등 사용된 일회용품들이 카페에 놓인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여갔다.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2018년 8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이유로 한시적으로 사용이 허용됐다. 이후 올해 1월 다시 규제 재개 방침이 정해졌지만,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유예' 요구가 나오면서 규제는 다시 미뤄졌다.
코로나19 정점이 지나고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맞는 상황에서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또 다시 환경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규제 재개 방침에 대한 인수위의 갑작스런 유예 요구를 두고 정책의 일관성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회용품 사용을 오히려 권고하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코로나19 일회용품 사용 급증했는데…인수위 한 마디에 '오락가락'
1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20년 기준 폐기물 중 플라스틱류는 전년 대비 19%, 발표수지류는 14%, 비닐류는 9% 증가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배달용품 등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2018년 8월 시행됐던 제도다. 환경부가 2019년 말 발표한 일회용품 감소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을 35% 이상 감축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규제는 일단 유예됐다.
비대면 소비 증가로 폐기물이 늘면서 환경부는 지난 1월, 규제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업계 의견 등을 반영해 3개월 유예 기간을 둬 4월 1일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까지만 해도 환경부는 "4월 1일 시행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현재 일반 식당에서도 다회용 수저, 그릇 등을 사용하듯이 다회용 컵도 위생적으로 세척해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주일 새 환경부의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달 28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일회용 컵 규제를 유예하는 게 좋겠다"고 밝히면서 환경부는 인수위와 협의 끝에 '코로나19 유행이 끝날 때까지' 단속을 미루기로 한 것이다. 명확한 단속 유예 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인수위의 '한 마디'에 중요한 환경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에 대해 환경 단체들은 비판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환경회의는 성명에서 "인수위가 할 일은 다회용 컵을 사용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고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이라며 "이미 질병관리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식품이나 포장 용기를 통해 확산할 위험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실제 다회용기 사용과 코로나19 감염의 과학적인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은 반면, 일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폐기물 증가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체 폐기물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염정훈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썩는 데 500년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년 수백만 톤씩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데, 결국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독성 물질과 결합한 채 바다에 축적된다"며 "잘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과 작은 물고기에게 삼켜진 뒤 바다의 먹이사슬을 타고 사람의 입속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 폐기물 직매립 금지까지…환경 정책 고민해야
게다가 지난해 7월 환경부는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 추진계획'에 따라 2026년부터 수도권 지역에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 폐기물 직매립을 금지한다고 공포했다. 수도권 외 지역은 2030년부터 금지된다. 그간 상당한 양의 가연성 생활 폐기물이 땅에 묻혀 매립지 부족과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폐기물 처리 시설이 부족해 4년 뒤 또다시 '쓰레기 대란'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해 대규모 소각 시설을 지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입지 선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부터 세 번 연기되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쓰레기 소각장이 주민 기피시설에 해당하는 탓이다.
지난해 12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2026년, 수도권 직매립 금지 지키기 어렵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설문조사에 응답한 수도권 기초자치단체 55곳 중 23곳(41.8%)이 "2026년까지 준비가 불가능하므로 매립금지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환경 단체들이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국민이 쓰레기 대란 사태를 겪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강력한 쓰레기 감축 기조로 가야 한다"며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그 시작"이라고 전했다.
이어 "인수위가 일회용 컵 규제에 제동을 걸면서 올해 예정된 다른 규제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6월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는데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규제를 계속 강화하는 게 맞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후퇴하면 나중에 사회가 부담해야 할 비용과 혼란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6월부터 시행되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커피나 음료 등을 일회용 컵으로 사 마실 때 보증금이 포함된 가격으로 구매하고 이후 컵을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또 11월 24일부터는 매장 내에서 플라스틱 컵 뿐만 아니라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사용도 불가능하다.
염정훈 캠페이너 또한 "과거 정부는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해 2018년 1월부터 시행된 '자원순환기본법'에 근거해 같은 해 자원의 효율적 이용, 폐기물의 발생 억제 및 순환 이용 촉진에 대한 10년 단위(2018~2027) 계획을 발표했다"며 "일단 수립된 계획을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유예하다가는 다른 국가들의 강화되는 환경 정책에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한 채 수출 품목들의 규제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자체적으로 일회용품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영업자들도 있기에 정부가 명확한 의견 표명을 해 규제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가 오락가락하면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준비한 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윤정(30)씨는 "원래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은 사용을 안 하고 다회용 컵을 자체 제작해 그 컵을 사용하는 분들에게 음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다회용품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사용하는 등 책임의식을 가지고 영업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규제에 대한 홍보 부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환경부는 1월 규제 재개를 발표했지만, 사업주들과 이용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50대 남성 백모씨는 "시민들도 일회용품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편리함에 길들어 있어 그렇다"며 "계도 기간을 길게 가지고 소비자에게 안내문을 주는 등 시행 정책을 미리 홍보하고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줄여줄 방안도 차기 정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다만 홍수열 소장은 "싸고 편하게 쓰려고 하다 보니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결국 환경 비용까지 고려하는 소비를 해야 한다. 반대를 하기 위한 근거를 찾을 게 아니고 다회용기 공유 등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