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체크]인수위가 쓴 탈원전 청구서, 어디까지 사실일까?

작년 온실가스 증가, 코로나 회복 '세계적 추세'
탈원전에 한전 13조원 손실…원료가격 상승 결정적
전기요금 동결로 한전 적자 심화는 사실

인수위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앞으로 5년간의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해 지난 12일 첫 보고서를 냈다. 시작인만큼 현실진단에서부터 시작한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오히려 늘었고 전기요금 압박이 가중됐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작심비판한 인수위의 '탈원전 청구서' 진단내용 중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해석인지, 누락된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 탈원전 때문에 늘었다?

 
▶ 2022.4.12. 인수위원회 발표자료
"2021년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에 비해 4.16%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이는 원전은 감소한 반면 석탄발전 소폭 증가와 LNG 발전 16% 급증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탈원전으로 인한 공백을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발전이 메우는 바람에 온실가스가 늘었을까? 인수위의 말을 들으면 살짝 헷갈리지만, 실제로는 원전 발전량이 소폭 감소한 것 훨씬 이상으로 LNG발전량의 증가가 컸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력 발전 전력판매량은 150.4GWh(기가와트시)로 전년보다 2.2GWh 줄었다. 반면 LNG 발전 전력판매량은 163.4GWh를 기록해 전년보다 22.2GWh 늘었고 석탄 발전 전력판매량은 188.9GWh로 전년보다 1.5GWh 증가했다.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달 발표한 '글로벌 에너지 리뷰: 2021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에너지 분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63억톤으로 전년 대비 6%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지난해 세계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게 IEA의 분석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경제성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세계 경제 생산량은 전년 대비 5.9% 증가했고, 탄소배출량도 그와 비슷하게 늘어났다. 지난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원전이 감소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엔 코로나19라는 너무 큰 변수가 있는 셈이다.

자료: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한국수력원자력 열린원전운영정보

특히 지난해 국내 원전 가동률은 76%로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중 최대치였다. 반핵 단체들은 문 정부가 실질적으로 '감원전'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반면 친원전 진영에선 월성1호기 수명을 연장하고 신한울1·2호기를 제때 완공해 가동하는 등 원전 발전량 자체를 늘리지 못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었다고 지적하는 등 시각차가 크다.
 
▶ 2022.4.12. 인수위원회 발표자료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201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을 낮춘 2017년의 경우 2.5% 증가, 2018년 2.3% 증가세로 반전했으며 원전 가동률이 높아진 2019년 –3.5%를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7.5%로 감소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정점을 찍고 2019년과 2020년 감소로 돌아섰다. 2017년과 2018년의 배출량 증가에 대해 인수위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을 낮춘 점을 지적했지만, 이 역시 고려할 지점이 많다.
   
2018년 원전 부실시공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한때 원전 24기 중 13기가 가동을 정지하고 점검에 들어갔다. 2011년까진 90%대였던 원전 가동률이 80%대로, 2016년 이후론 70%대로 낮아진 것 역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 이후 국내 원전들의 납품비리, 부실자재·시공 등 문제가 줄줄이 터진 탓이 컸다.
   
다만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원전 점검과 정지일수가 최근 들어 더 확대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당시 8447일이었던 원전 정지일수는 지난 5년간 1만2298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이에 대해서도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규제기관에서는 "안전에 관한 사항을 정치적 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한다.
   

원전 줄어서 한전 전력구입비 13조 늘었다? '절반의 사실'


▶2022.4.12. 인수위원회 발표자료
"전기요금 총괄원가의 80%를 차지하는 한전의 전력구입비는 원전의 발전량 감소로 인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13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5년간 원전 발전량이 줄고(3%p), 기존 설비의 평균 이용률도 줄어들어 (10.1%p) 재생에너지, LNG발전등 원가가 높은 타 발전원으로부터 전력 구매를 늘렸기 때문입니다."

인수위는 기존 원전의 이용률 저하로 전력구입비가 8조1천억원 늘었고, 월성1호기 조기폐쇄로 약 1조5천억원, 신한울1·2호기 준공지연으로 3조4천억원 등 총 13조원의 비용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원전 이용률 저하 요인 중 5조2천억원에 해당하는 부분은 원전 관련 비리나 지진, 공극 등 특수상황에 의한 것으로 정책적 요인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신한울1·2호기 준공지연과 관련해서는 이들 원전의 공백만큼 원가가 높은 다른 발전원을 사용하게 되면서 늘어난 비용을 추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오른 원유, 천연가스 등 원료가격도 숨어있다.

최근 30개월간 SMP와 국제유가 비교. 27개월차가 2021년 12월에 해당한다. 전력거래소 홈페이지 캡처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내는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육지 기준으로 지난해 1월 kWh(킬로와트시)당 70.47원에서 매월 상승해 12월엔 142.46원을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한전의 비용 지출이 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기 판매가격은 동결된 점이 한전의 실적 악화에 가장 큰 원인이 됐다.

▶ 2022.4.12. 인수위원회 발표자료
"한전의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전기료 인상 부담을 대부분 다음 정부로 전가, 한전 부채의 급증과 더불어 갈수록 커다란 민생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인수위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5년간 7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2019년 누진세 개편으로 전기요금을 0.5% 인하한 후 임기 말인 올해에야 소폭 올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SMP는 2008년 122.65를 기록한 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올랐는데, 이때 이명박 정부는 매년 4% 안팎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2011년에는 8월에 4.9%, 12월에 4.5% 두 차례에 걸쳐 요금을 인상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을 제외하고는 SMP가 다시 상승세를 보였지만 요금은 동결됐다. 한전의 손실이 원전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은 과장됐지만, 원가 상승에도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인상 부담을 다음 정부로 넘겼다는 인수위의 비판은 사실인 셈이다.
 

'탈원전 비판' 집중한 인수위…윤 정부 탄소중립 방향은?


화력발전소 굴뚝. 연합뉴스
한편 국가 에너지정책에서 원전 관련 논의가 중요하긴 하지만, 인수위의 보고서에는 신재생에너지나 탈석탄 논의, 건설·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 등 다른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다만 인수위는 이번 첫 진단을 시작으로 기후·에너지 5대 정책방향을 담은 전략보고서를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40%를 현실적인 수준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서도 추후 수정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협 인수위 상임기획위원은 "지난 정부는 기술중립이라는 원칙을 깨고 탈원전을 전제로 한 에너지 정책을 펴왔다"며 "새 정부는 탈원전 금기를 해체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모든 기술을 테이블에 올릴 것이다. 정치적인 마찰로 비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