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최고 물가"
매달 발표하는 미국의 전년대비 소비자물가지수가 5개월 연속 '40년만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물가는 지난해 11월 6.8%에서 지난달 8.5%까지 쉼 없이 오르는 중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고물가의 주범이었습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도 6.4%나 올라, 미국은 에너지뿐 아니라 경제 전반이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물가폭등은 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80년대 초를 연상시킨다는 걱정도 나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휘발유에 옥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 함량을 15%로 높이는 긴급 명령을 발동 했습니다. 미국은 그간 공해유발 걱정에 여름에는 에탄올 함량을 낮췄는데 이걸 풀어준 겁니다. 그만큼 물가 걱정이 크다는 반증입니다.
빅스텝
이렇게 물가가 크게 오르면 서민들의 삶이 크게 어려워집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결국은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돈을 거둬들여야 합니다. 금리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인데, 문제는 속도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조정할 때 기준이 되는 단위가 25bp 즉 0.25%포인트인데요. 금융시장에선 연준이 다음달에 금리를 한 번에 두 계단 (0.25%p x 2), 즉 0.5%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월가에선 '두 걸음을 한 번에 걷는다'고 해서 빅스텝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번에 물가가 8%를 넘겨 더 오르는게 확인됐기 때문에, 다음달 빅스텝으로 부족할 경우 그 다음달인 6월에도 다시 빅스텝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이 월가 이코노미스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절반이 넘는 56명이 5,6월 연속 빅스텝을 전망했다고 합니다.
커지는 이자부담
지금 미국 기준금리는 상단 금리가 0.5%(0.25%~0.5%)입니다. 5월과 6월 두 번 올리면 1%포인트가 더 올라서 기준금리 상단이 단숨에 1.5%까지 급상승합니다. 우리나라 현재 기준금리가 1.25%인데 우리가 금리를 안올리면 6월에는 금리 역전이 일어납니다. 돈은 이자를 더 많이 주는데로 움직이죠. 미국 금리가 더 높으면 자금은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빠집니다.주식시장 등에 투자된 자금이 빠져나가면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고, 이렇게 되면 원자재 가격이나 수입물가도 올라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됩니다. 실제로 미국의 빅스텝 전망이 나온 뒤로 지난달 초부터 원달러 환율은 1200원을 훌쩍 넘었고, 우리 주식시장도 코스피가 3000선을 깨고 추락해 2700선조차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달러 유출을 막자고 우리가 미국보다 금리를 더 급격하게 올리는 것도 부담입니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이 너무 커지면 채무자들의 연체나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4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가 어떤 금리 결정을 내릴지 관심입니다. 총재 부재 상황에서 금리 동결 전망이 유력하지만 상황이 워낙 유동적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상하이…도사린 저성장 트랩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2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성장률은 더 낮게 물가는 더 높게 전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3.1%인데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국제유가나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도 걱정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국 상하이가 코로나로 봉쇄된지 2주가 넘었습니다. 예상보다 봉쇄가 더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주요 공장 생산이 멈춘 건 물론 전세계 물동량 1위인 상하이 항의 운영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전세계 물류대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꼬이고 이게 다시 고물가, 그리고 투자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되면서 이러다가 스테그플레이션, 7,80년대 오일쇼크 비슷한 상황까지 오는게 아니냐는 걱정까지 제기됩니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안정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 상황이 빠르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것과 중국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올 상반기 경제 향방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걸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