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에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서울 강남권 등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 심리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서울 외곽까지는 아직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등 양극화 장세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수 년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데 따른 '학습효과'로 인기 지역 고가 주택 한 채 보유를 선호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현상이 경향으로 자리 잡은 만큼, 새 정부에서 정책 변화를 꾀하더라도 똘똘한 한 채 현상과 그에 따른 시장 양극화는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격·매물 수·청약 경쟁률, 끝에는 양극화
새 정부 출범 이후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시장이 들썩이고 있지만, 서울 외곽 지역은 하락세가 이어지며 문재인 정부에서 심화된 양극화가 짙어지는 모양새다.
1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1주(4일 기준)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하락(0.01%)에서 보합(0.00%)으로 돌아섰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재건축 규제 손질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강남구(0.02%) △서초구(0.02%) △송파구(0.01%) 등 재건축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반면 △도봉구(-0.04%) △강서구(-0.03%) △강북구(-0.02%) 등 서울 외곽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매물 증감을 봐도 양극화 양상이 뚜렷하다. 인수위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1년간 면제하겠다고 했지만 다주택자들은 서울 외곽 등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인 매물을 내놓는 모양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12일 기준 대선 당일(3월 9일)과 비교해 서울 아파트 매물이 가장 많이 증가한 자치구는 강북구였다. 강북구 아파트 매물은 약 한 달 동안 11.9%(945건→1058건) 늘었다. 반면 같은기간 동안 서초구 아파트 매물은 1.6%(3861건→3801건)가 줄었다. 급매물이 소화되고 집주인들이 매도하려고 내놨던 주택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청약시장에서도 지역별 온도차가 감지된다. 강남권에서는 고분양가 논란에도 세 자리수 경쟁률 보이는 단지가 있는가 하면 강북에서는 수백 개의 미분양이 발생한 단지가 나왔다. 서울 송파구 송파동 '잠실 더샵 루벤'(옛 송파성지)은 지난 5~6일 청약 접수를 진행한 결과 29가구 모집에 7310명이 몰리면서 평균 252.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해당 단지는 국내 최초의 수직 증축 리모델링 단지로 분양 물량이 30가구 미만인 탓에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분양가가 3.3㎡당 6500만원(전용 106㎡ 25~26억원)에 책정되는 등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강남권에서는 보기 드문 중대형 신축 단지에 분양권 전매제한이나 실거주 의무 등도 없어 현금부자 수 천명이 몰렸다. 반면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강북종합시장 재정비)는 전체 단지(216가구)의 91.6%(198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11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정책, 시장 반영까진 시차…정책 기조 바뀌어도 '똘똘한 한 채' 계속"
새 정부 출범과 그에 따른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가 예정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똘똘한 한 채 현상과 이에 따른 시장의 양극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급등의 '주범'을 다주택자로 지목하며 수년간 대출과 세제 등 다양한 규제를 1주택자 위주로 재편하면서 인기지역 고가 1주택 선호 현상인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대세'로 자리 잡아서다. 현재 다주택자는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고 취득세와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주택 관련 세금도 다주택자에게는 중과되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도 강남 등 인기지역에 대한 선호는 있었지만 '똘똘한 한 채'가 경향으로 자리 잡은 것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일종의 학습효과"라며 "시장은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물에 물감이 한 방울 떨어져서 번지는 것처럼 서서히 바뀌기 때문에 새 정부가 부동산 정책 개편에 나서더라도 당분간 똘똘한 한 채 현상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우병탁 부동산팀장도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정책 변화에 따라 수요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제도가 바뀐 뒤 인식이 바뀌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며 "지금의 똘똘한 한 채 현상도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과 세금 등 관련 규제가 몇 년에 걸쳐서 강화되면서 나타났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일부 완화된다고 해도 똘똘한 한 채 현상과 시장 양극화는 당분간 더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과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팎의 목소리를 종합해보아도 향후 다주택자보다는 무주택자와 1주택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세워질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똘똘한 한 채 현상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1일 "주택은 수요의 구체적인 내용, 무주택자 등 실수요인지 투기수요인지 등에 맞는 공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철학"이라며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안정을, (집을) 못 가진 사람들 또는 주거 상향을 하고자하는 욕구와 생애 설계가 필요한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공급 정책이 저희가 추구하는 공급이지 부의 증식 수단 또는 시장에 이상 과열을 부추길 수 있는 그런 공급은 새 정부에서 추구하는 공급이 아니"라며 새 정부에서도 1주택자 등 실수요자 중심의 정책 기조를 갖고 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