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면서 집회·시위 구역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방부 청사 인근에는 광화문 광장과 같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만한 공간이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앞 공원화'를 밝혔지만, 임기 내 실현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법률상 대통령 '관저'에 대해서만 집회·시위 금지 규정이 있는데, 이를 집무실도 포함된다고 폭넓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 공간이 과거보다 대폭 축소될 것을 우려한 시민사회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와 마찬가지로 반경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에 보고했다. 한남동 관저 반경 100m와 용산 국방부 청사 반경 100m 이내 모두를 집회·시위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등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때 '경계 지점'은 국방부 청사 '외곽 담장'이다. 과거 법원이 집시법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경계 지점'을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담장이 아닌, 청와대 '외곽 담장'으로 판단한 바 있다.
문제는 이미 용산 국방부 청사 인근에는 집회·시위를 할 만한 공간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현재 국방부 청사는 동쪽과 남쪽이 주한미군 기지와 붙어 있는데, 미군 기지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어 그 안에서 집회·시위가 열리기는 불가능하다. 미군 기지를 넘어 이태원동 지역까지 넓혀 살펴봐도 집회·시위를 위한 마땅한 공간이 별로 없다.
국방부 청사 북쪽 지역의 경우 바로 앞은 왕복 6차선 도로(이태원로)가 접해 있고, 길 건너편에는 전쟁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전쟁기념관 정문에는 2천명 이상 대규모 인원 수용이 가능한 '평화의 광장'이 있지만, 이곳은 한국전쟁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라 집회·시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이곳은 현충 시설로 지정이 돼 있어서 집회·시위는 할 수 없다"며 "외부 행사 등을 위한 대관은 가능하지만 추모나 평화와 관련된 행사만 가능하고 집회·시위는 승인이 안된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 우측부터 녹사평역 지역까지는 전부 주한미군기지 구역이다.
청사 서쪽 지역이 유일한 집회·시위 가능 구역인데, 상가와 주택 밀집 지역을 제외하면 한강대로가 유력한 공간이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은 집회·시위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차도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곳에는 광화문 같은 광장이 없기 때문"이라며 "한강대로는 집시법 시행령상 '주요 도로'에 해당된다. 집회·시위를 위해 일정 부분 교통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이나 삼각지역 지하철 출구 부근 등도 소규모 집회·시위가 열릴 곳으로 꼽힌다. 다만 녹사평역 인근은 집시법상 주요 도로가 아니라 집회·시위가 벌어지더라도 인도밖에 이용하지 못해 대규모 인원이 모이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하철역 부근도 마찬가지로 공간이 좁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 청사 외곽 담장을 기준으로 100m 이내 집회·시위가 금지된다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은 더욱 줄어든다. 대표적으로 국방부 바로 앞 이태원로 대부분이 집회 금지 구역이 된다. 현재 국방부를 상대로 한 의문사 진상규명 등의 집회·시위가 이 공간에서 주로 일어나는데, 앞으로는 모두 금지되는 것이다.
청와대의 경우 서쪽으로는 효자치안센터, 남쪽으로는 자하문로16길 21, 동족으로는 종로구 팔판동 126번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해왔다. 하지만 집회·시위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인근에 대규모 인원이 모일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이 있는 데다가, 금지구역 바로 앞 공간도 보행자가 많지 않아 대부분 허용됐다.
반경 100m 이내이지만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도 1인·피켓 시위나 기자회견은 열릴 수 있었다.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도 용산 청사 바로 앞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구역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시위는 길 건너 전쟁기념관 쪽 인도나 삼각지역 출구 부근에서야 가능할 예정이다. 인수위는 현재 구체적인 경호 구역 설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이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권리를 자의적인 해석만으로 쉽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법률상에는 대통령 '관저'만 명시돼 있을 뿐, 집무실에 대한 내용은 따로 없는데 자체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을 내고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라 경찰이 집시법상 100m 집회 금지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집시법 해당 조문의 문언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결에 따른 해석에 의하더라도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논란만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라 강구해야 할 것은 대통령이 헌법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국민 누구나 가까이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집회 관리 방안이어야 한다"며 "경찰의 태도는 집시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이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윤석열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찰은 집시법 제정 당시 청와대에 집무실과 관저가 같은 건물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입법 취지상 관저에 집무실이 포함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 조항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대통령 집무실 역시 법에서 언급하는 관저 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 당선인은 지난달 20일 용산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며 집무실 조감도를 공개한 바 있다. 이때 집무실 바로 앞을 공원으로 꾸며서 시민들에게 개방, 일부는 집회·시위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미군 기지 반환이 먼저 돼야 하기 때문에 임기 내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