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사퇴론'의 최일선에는 검찰 사령탑인 김오수 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김 총장은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모두발언에서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으로서 더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회의 시작부터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7시간 넘게 이어진 마라톤 회의 뒤에 기자들과 만난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뇌부 총사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총장이 큰 결심을 한 것이다"라며 "대부분의 검사장들도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되고 일치된 입장"이라고 답했다. 지검장들이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의미냐는 질문에는 "해석 나름일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런 분위기는 회의 시작 전부터 감지됐다.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고검장 전원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부분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회의 참석자는 김 총장이 직접 사직서를 제출하고 배수진을 쳐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여당인 민주당의 당론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사퇴론을 언급하는 것이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김오수 총장 이하 검찰 수뇌부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사퇴론'이 단순한 엄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당장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을 저지해야 한다는 공감대에서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여전히 김 총장을 비롯한 수뇌부에 대한 '내부 책임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수완박 '내부 책임론'에 흔들리는 검찰 수뇌부
이런 불신은 특히 이성윤 서울고검장과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이른바 '친정부 성향' 검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김 총장도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차관을 역임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을 조율해 왔다. 서울 중앙지검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 검찰청과 지청에서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의견을 발빠르게 개진한 것도 여당 뿐만 아니라 검찰 수뇌부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전국 지검장 회의가 끝난 뒤 검찰이 '검수완박'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전원일치한 결론'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한 것도 조직 내부의 불신감을 인지하고 있기때문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12일 열리는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다. 민주당은 이날 회의에서 검수완박의 당론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경찰 출신 황운하 의원은 검찰의 집단 반발에 대해 "공직 기강 문란 행위이고 굉장히 오만한 특권 의식"이라며 "검찰의 직접 수사를 분리해 내는 것부터 하고 그다음 수사권의 전반적인 재편을 논의하면 된다"고 입법 강행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은 현재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수사 기능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수사 기능을 뺏긴 검찰은 공소를 제기하는 기능만 담당한다.
2020년 말부터 시작된 관련 논의는 지난 3월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변곡점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일인 5월 10일 이전에 검찰 수사권을 먼저 폐지하고, 중수청 설치 등 대안은 추후에 논의하자는 구체적인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역풍을 우려하는 등 신중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