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하거나, 남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빼돌린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의료직군의 마약류 의약품 관리에 빈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 특성상 의료진들은 마약류 의약품에 접근하기 수월한 반면, 일탈을 포착하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된 범행의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약류 의약품의 강한 중독성과 판매시 수익이 상당하다는 점 또한 범행의 이유로 꼽힌다.
더구나 마약류 의약품을 사용하면서 환자 투여량을 실제보다 부풀려 기록한 뒤 남은 용량을 빼돌리는 등 의료진이 관리의 빈틈을 악용하기 쉽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8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 등을 훔친 혐의를 받는 A씨를 절도와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A씨는 전날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프로포폴 앰플 6개와 주사기 1개를 절취하고, 병원 화장실에서 이를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 병원에 출근한 지 4일째에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포폴은 과도하게 투여하면 혼절할 위험이 있어 앰플 1개도 여러 번 나누어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A씨는 앰플 6개를 한꺼번에 투약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경찰은 추가 투여자가 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만약 A씨가 판매를 목적으로 절취했을 경우 금전적 이득은 적지 않다. 프로포폴이 불법적으로 판매될 때 앰플 1개당 30만 원에서 40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A씨가 절취한 프로포폴 앰플 6개는 200만원 상당이다. 경찰이 금전적 목적을 의심하는 이유다.
A씨 사례처럼 의료진이 병원에서 마약류 의약품을 빼돌려 투약하거나 판매한 사건은 수년간 반복돼왔다.
의료진 스스로가 약물에 중독돼 투약하다 적발된 경우가 있다. 2020년 10월 10일 경기 수원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20대 간호사는 새벽에 몰래 수술실을 찾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금고에서 프로포폴 10개(약 300만 원 상당)를 훔쳐 집에서 투약한 혐의로 검찰 기소됐다.
과도한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2020년 3월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던 20대 간호조무사는 프로포폴을 과다투약한 채로 수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훔친 약물을 직접 투약하지 않고 이익을 얻으려 판매한 사례도 있다. 2016년 자신이 근무하거나 처방받은 병원에서 졸피뎀과 벨빅 등 약품을 훔쳐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 간호사 등 17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진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마약류 의약품을 절취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로 의약품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의료진이 악의를 품는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등 감시 기관의 눈을 피해 의약품을 빼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병원의 마약류 의약품 관리를 감시하지만, 의료진이 소량의 의약품을 지속적으로 빼돌린다면 적발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마약류 의약품 관리 시스템이 부실한 것이 문제다"며 "병원에서 마약류 대장을 기록하는데 이와 다르게 조금씩 (약물을) 남겨서 다른 용도로 쓰거나 하는 방식으로 도난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의약품 판매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진들이 이같은 범죄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로포폴의 경우 1개당 원가는 1만 원이 채 안되는데, 판매 가격은 30~40배에 달한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은 마약류 의약품들이 음성적으로 팔아 큰 이익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며 "프로포폴, 아티반, 벤조디아제핀 계열 등이 국내 의료계 쪽에서 주로 나오는 약품이다"고 설명했다.
아주대 약학대학 이범진 교수는 "의료인들이 치료용 마약류를 주로 다루다보니까 노출이 자주되고 그만큼 중독될 확률도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