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기살인'(감독 조용선)은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의 실체와 더불어 17년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와 증발된 살인자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공기살인'은 영화 '소원' '터널' '비스티보이즈' 등의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조용선 감독의 철저한 자료 조사와 전문가 검수를 거쳐 완성된 영화다.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는 가습기살균제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 '공기살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용선 감독을 비롯한 배우 김상경, 서영희, 이선빈, 윤겨호는 하나같이 사명감으로 작품에 임했다고 이야기했다.
조용선 감독은 가장 먼저 "사회적 참사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루는 감독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일부분 있다"며 "긴 시간 있었던 사건을 다 담기엔 짧은 시간이라 피해자분들께서 부족하게 보실까 걱정된다. 많은 분이 이 영화를 보시고 다시는 이런 영화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가습기살균제라는 형태의 제품은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1994년 첫 출시되어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약 천만 통이 판매되면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폐 섬유화 증상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조사 결과 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임이 밝혀졌다. 피해자만 백만여 명, 생활용품 중 화학물질 남용으로 인한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으로 기록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공기살인'이 나오기까지 6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사이에도 그리고 지금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끝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도 중요했다.
조 감독은 "사실상 내가 집중한 부분은 가해자들이 어떻게 입막음하고 행동하려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 안에서 탄생한 게 네 명의 캐릭터"라며 "네 명의 캐릭터를 통해 100년 뒤에도 대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킹메이커', 드라마 '크라임 퍼즐' 등 다양한 작품에서 맹활약한 윤경호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오투의 서우식 팀장 역을, 서영희는 태훈의 아내이자 영주의 언니인 동시에 피해자 한길주 역을 맡았다.
김상경은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관해 "나도 가습기살균제 기사를 처음 봤을 때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는 남의 일 같았던 게 영화를 봄으로써 내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영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일 황당한 건 대부분 피해를 준 사람이 피해를 본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아픈지에 관해 설명해보라는 점이다. 이건 온당치 않은 일"이라며 "최근 미국에서 수입한 자동차 방향제에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똑같은 성분이 들어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거다. 정부, 국민 등이 영화를 보고 많이 생각하시게 되면 좋겠다"고 이번 영화가 가진 의미를 짚었다.
단번에 섭외에 응했다는 윤경호는 "김상경 선배님이 다 같이 회식하는 자리에서 '흥행은 보장 못하더라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뜨거운 마음으로 같이 임했다"며 "하면 할수록, 이 이야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냥 열정만으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내 가까이에도 피해자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단순히 배우의 연기적 욕심으로만 하면 안 되겠다, 누가 되지 않게 해야겠다고 계속 고민하며 작업했다"며 "이 영화가 꽃피는 봄에 어울릴만한 반가운 영화는 아닐 수 있지만 잘 준비한 작품이 오해 없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선빈 역시 "초반에 시나리오 받았을 때 감독님께서 많은 양의 자료를 주셨다. 이걸 시험공부 하듯이 노트를 옆에 놓고 요약하면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봤다"며 "그때 사명감이 더욱더 크게 생겼다. 이 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으면 내 인생에도 영광이겠다 생각했다"고 출연을 결심하게 된 당시를 떠올렸다.
서영희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영화로나마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알리고, 이를 통해 피해자가 위안을 얻길 바랐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에 촬영을 마쳤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겪어본 적이 없어서 흉내만 냈던 거 같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지금 느꼈던 감정으로 연기했으면 피해자분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공기살인'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영화로 그리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잊지 말자는 메시지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11년 만에서야 피해구제 조정안이 나왔지만, 기업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을 규탄했다.
조용선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실제 사건과 다르게 했던 이유는 제도권에 있는 분들, 기업을 포함해 정부분들께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앞으로도 지켜볼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라며 "적어도 진정한 사과가 먼저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영원히 가족을 잃었는데 어떤 액수가 위로가 되겠나. 끊임없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