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냉동 생선을 들고 서 있던 정모(61)씨는 가격표와 생선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너무 올랐어요. 살까 말까 고민이 되네요. 물건만 들었다 놨다 하고. 참 나…"
정씨가 옆에 있던 냉동 오징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런 것도 너무 비싸서…10만 원 가지고 나와야 살 게 별로 없어. 말 그대로 살 맛이 안 나죠."
10년 만에 찾아온 최고 수준의 물가 상승률에 치솟는 외식비까지 가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숨이 턱 턱 막히는 이른바 '미친' 물가에 우울함까지 호소하기도 한다.
지역 맘카페에는 물가 인상으로 인한 우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회원은 "카레 재료 사러 마트에 갔는데 감자 두 알에 4천 원이라고 해서 너무 깜짝 놀랐다"며 "우유도 500원 오르고, 냉동만두도 800원씩 오르고 다 오르니 너무 너무 우울하다"고 호소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운다는 회원도 "다들 명품 가방에 외제차에 잘 사는데 저는 애들 학원비도 다 못 해 주다 보니 물가에 우울증이 울컥 밀려온다"고 전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다 보니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만난 주부 김모(64)씨는 "먼저 마트 왔을 때랑 지금이랑 가격이 1천 원 이상 차이가 난다"며 "예전에는 샐러드도 몇 개씩 사 놓고 먹었는데 지금은 필요한 만큼만 딱 딱 사서 아껴 먹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수입이 많으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지만 수입은 고정돼 있고 생활비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가니까 부담되고 장보는 게 무섭다"고 한숨을 쉬었다.
물가 인상에 대한 서민들의 '비명'은 이미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다. 이는 지난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4~9월 2%대를 유지해 오다 지난해 10월(3.2%)부터 3%대로 올랐다.
외식비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6.6% 상승했다. 1998년 4월 7.0% 상승한 이후 2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오른 수치다.
외식비와 생활물가가 줄줄이 오르면서 식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집밥'을 택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이마트의 지난 3월 축산 등 고기류 매출은 전달 대비 17% 증가했다. 채소는 11.7% 올랐으며 조미료와 소스류도 9% 올랐다.
간편하게 집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 수요도 증가 추세다. 특히 식재료 구매 비중이 적은 1인 가구에서 인기다. 홈플러스 인하점의 경우 1인분 밀키트를 도입한 '다이닝 스트리트'에서 밀키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87% 신장하기도 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정부는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다음달부터 정부는 석 달 동안 유류세를 현행 20% 감면에서 30%로 늘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추가 금리 인상 카드도 거론되고 있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6일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추가적인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경제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