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대선 과정에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공언하며 내놓은 공약이지만 논란이 여전하고, '여소야대' 구도의 불리한 상황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두 달도 채 안 남은 지방선거도 변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여가부 폐지'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도 흐른다. 또 여가부 폐지 자체에 의문점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일단 여가부 장관을 임명한 뒤 개편 방안에 대한 계획 수립 역할을 맡길 방침이다. 다만 신임 장관이 스스로 부처 폐지나 개편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기류 바뀐 '여가부 폐지'…반대 여론, 여소야대 구도, 지방선거 등 변수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수위는 기존에 '여가부 폐지'를 고수하던 입장에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그런데 이것을 어떤 식으로 정부조직 개편에 담아야 할지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있다. 지금 방침을 정했다고 해서 그대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여가부 폐지에 대한 기류 변화는 여가부 장관을 임명하겠다는 인수위의 입장에서도 읽히고 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기자회견장에서 "임명된 여가부 장관은 조직을 운영하면서 그 조직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국민을 위한 개편 방안이 있는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 폐지가 속도조절을 하게 된 배경은 여론과 함께 '여소야대' 국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여성계 등 반대 여론은 거센 상태다. 이와 함께 여가부 폐지가 담긴 '정부조직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지만, 여소야대 구도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도 변수로 작용한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여가부 폐지'가 선거에 도움이 될 지 의문적인 시각을 보내는 양상이다.
'하루 빨리 대안을 제시하라'는 당내 공개 반발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 현직 여성 지방의원모임인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와 전직여성지방의원모임인 '전국여성의정회'는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가 여가부 폐지 이후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젠더갈등 해소, 여성 인권 강화,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등 다양한 여성 의제를 아우를 수 있는 미래 지향적 부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공동대표 박순자 의정부시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가부를 없애면 기존에 여성들을 대변해주는 부처가 없어져 하던 일을 다른 곳에서 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려를 표한 것"이라며 "당내에서도 (여가부 폐지로) 뜻이 100% 같지는 않고 더 숙고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전직 의원도 통화에서 "단순한 폐지보다 여가부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 확대·재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에 방점을 두면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윤석열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여성들이 느끼는 유리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여가부 폐지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여가부 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조직 개편을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겠다고 이날 밝히기도 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거대 야당과의 협치를 고려한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특히 여가부 폐지의 경우 다른 정부부처 개편보다 '뜨거운 감자'다. 신임 여가부 장관 임명 방침을 밝히며 부처 존폐 논의에 대한 퇴로를 일단 열어 놨지만, 향후 개편과 폐지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여성계 거센 반발 지속…"구조적 성차별 여전히 존재"
한편 여성계의 거센 반발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날 여성폭력 피해 당사자 및 지원 단체 535곳은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연대'를 결성해 인수위에 면담을 요구했다. 이들은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여성폭력을 발생시키고 '피해자를 탓하는' 성차별적인 사회와 싸우는 일"이라며 여가부 폐지로 여성폭력 방지 정책 및 피해자 지원 제도가 퇴행할 것을 우려했다.
여성계는 '구조적 성차별'은 여전히 실존한다는 입장이다. 경제·교육·건강·정치 부문에서 남녀 격차를 파악해 순위를 도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별 격차 지수(GGI)는 지난해 156개국 중 102위로, 매년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 또한 2020년 기준 31.5%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민문정 대표는 "코로나 이후 많은 여성이 일터에서 쫓겨나 돌봄, 사회 안전망 위기가 구조적 성차별을 강화하고 있다"며 "그런 것을 바꾸기 위해 성 평등 관점을 갖는 정부 부처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