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과 한국의 인연은 묘하다.
20년 전인 2002 한일월드컵 본선에서 포르투갈은 한국에 무릎을 꿇고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으로 한국과 조별 리그 경기에 나섰지만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던 포르투갈 대표팀에겐 날벼락과 같은 경기였다.
악연은 인연으로 돌아왔다. 2018년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2022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전격 발탁된 것. 당시 벤투 감독의 선임을 두고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하는 여론이 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대표팀에 녹여냈다. 마침내 아시아 최종 예선을 7승 2무 1패 조 2위로 마쳤다.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내며 한국 축구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다.
인연은 다시 묘한 운명을 만들었다. 카타르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에서 벤투 호는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함께 H조에 묶였다. 한국 입장에선 포르투갈을 잘 아는 사령탑이 있는 것이 다행이 될 수 있다. 반면 벤투 감독은 조국과 싸워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에 대해 벤투 감독은 냉철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였다. 벤투 감독은 7일 오후 경기 파주NFC에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고국과 대결에 대해 "프로로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조국을 상대하기에 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클럽에서 전 소속팀을 맞이할 때와는 멘털적인 부분에서 분명히 다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경험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벤투 감독은 최종 예선 때 다른 국가처럼 똑같이 포르투갈을 분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포르투갈 대표팀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상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지도한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호날두는 전 세계에서 역대급으로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라면서도 "지금 포르투갈 대표팀은 뛰어난 선수가 많다. 선수 한 명이 아니라 팀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역대 대표팀 사령탑 중 단일 부임 기간 최장 기록을 경신 중인 벤투 감독. 역대 대표팀 외국인 사령탑 중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을 책임지는 기록을 추가하게 됐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까지 경기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는 "운이 좀 좋았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대표팀과 함께 보낸 시간이 중요했던 것이 전체 프로세스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됐다"며 "함께한 시간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제가 좀 운이 좋았던 것은 좋은 선수들이 있었던 것"이라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소집 때마다 선수들이 보여준 헌신 덕분이었다"고 고마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