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선제타격 주장을 겨냥해 즉각적인 핵 보복 방침을 밝히면서 한반도의 핵전쟁 문턱이 더욱 낮아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철회에 이어 '4월 위기설'이 거론되는 가운데 차기 정부는 시작부터 안보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5일 담화에서 선제공격 상황을 가정해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 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고 말했다.
핵무기 사용이 최후 수단이 아니라 1차적 수단임을 천명한 셈이다. 북한의 이런 핵 교리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김여정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남북간 사소한 충돌로 야기된 군사 분쟁이 쉽게 핵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여정 "전쟁 초기에 핵무력 동원"…사소한 충돌로도 핵전 비화 가능성
북한은 이전부터 선제타격이나 참수작전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공론화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고 서욱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폭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F-35 스텔스기 등 첨단정밀무기에 대응할 능력이 매우 낮다고 평가한다.이는 선제공격이 북한 핵을 억지하기보다는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위기시 선제타격의 위협에 노출된 북한은 자신의 핵미사일이 무력화되기 전에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것"이라며 'Use it or lose it'(쓰지 않으면 무용지물) 딜레마를 거론했다.
그는 선제타격이나 참수작전에 의한 북한 지도부 제거 위협이 그들의 핵 지휘통제체계를 위임형으로 바꿀 요인도 된다고 지적했다. 위기가 고조되면 신속한 대응을 위해 현장 지휘관에게 결정권을 주게 되고 이는 우발적 핵전쟁이나 사고 위험성마저 높인다는 것이다.
북한, 선제타격에 히스테리 반응…오히려 '선제 핵 사용' 딜레마 커져
다만 북한이 아직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담화는 "그 누가 우리를 다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단코 그 누구를 먼저 치지 않는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임을 재확인하며 민족 공멸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것도 나름 평가할 대목이다.
이는 사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는 남조선에 도발할 목적도 이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고 한 이후 유지돼온 흐름이다. 제재와 자연재해, 코로나19의 삼중고 속에 강경 일변도로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속사정이 읽혀진다.
무엇보다 이번 담화에는 말년의 서욱 장관만 공격할 뿐 '원점'이라 할 수 있는 윤 당선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짜이는지 지켜본 뒤 단계적으로 대응하려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표현에 수위조절을 하고 대남 행동적 조치가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부와도 대화할 수 있다는 간접 메시지도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尹 언급 없어 당분간 관망세 예상…강경 안보라인 포진, 전망은 어두워
김태영 당시 합참의장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북핵 공격시 핵기지 타격론'을 거론하자 북한은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비난하며 강경 기조로 급선회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금강산 피격 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현재로선 전망이 썩 밝지 않다. 윤 당선인의 외교안보라인에 이명박 정부 출신 강경 인사가 대거 포진한데다 윤 당선인 스스로가 청와대 이전 논란에서 보듯 경직된 사고를 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보수 지지층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차원에서 5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등에서 대북 압박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전술핵 실험이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같은 북한의 추가 도발과 맞물린 공포의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전작권도 없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도 없는 대북 선제타격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보수강경파 입지를 강화시키고 남북관계를 전쟁 직전의 심각한 상황으로 끌고 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