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올해 그래미 어워드 이변의 주인공은 존 바티스트였다. '올해의 앨범' 부문에는 존 바티스트, 카니예 웨스트, 릴 나스 엑스, 저스틴 비버, 도자 캣, 허(H.E.R.), 올리비아 로드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토니 베넷&레이디 가가가 후보에 올랐다.
'올해의 앨범' 부문 후보가 10팀에 이르고 막강한 경쟁자가 많았던 만큼 그의 수상을 예상하는 반응은 적었지만, 존 바티스트는 영광의 트로피를 안았다.
존 바티스트는 "제 앨범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 할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참여해줬다. 또, 함께 후보에 오른 분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저도 저세상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다. 모든 분들이 자신의 개성을, 본모습을 찾아가시길 바라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올해의 앨범'을 비롯해 총 5관왕을 기록했다.
'위 아'는 정통 재즈 기반에 가스펠, 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녹인 생동감 넘치는 앨범이다.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을 받은 '프리덤'(FREEDOM)을 포함해 '아이 니드 유'(I NEED YOU), '위 아', '텔 더 트루스'(TELL THE TRUTH) 등을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다.
엠넷을 통해 시상식을 생중계하던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존 바티스트를 보면 존 레전드가 데뷔할 때 느낌을 받는다. 알앤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을 잘 아우르는, 재능 있는 뮤지션인 것 같다. 제 생각에 그래미의 마지막 선은, 잘 만든 음악, 좋은 음악, 재능 있는 음악에 (상을) 몰아주는 거다. 그래서 존 바티스트에게 11개 부문 후보라는 영광을 준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대화 대중음악 저널리스트는 "앨범상이 가지는 의미가 여러 겹이 있는 것 같다. 차트 인기나 매거진의 비평 반응에서도 존 바티스트는 작년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사실 11개 부문 후보가 된 것부터 파격적이었는데 올해의 앨범상이라는 영예를 가져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존 바티스트가 앨범상을 받은 건 그래미의 상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라며 "외신에서도 앨범이 워낙 좋아서 '받을 만하다'는 평은 들었을 지언정, 존 바티스트가 받을 거라고 예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래미 어워드 본상(제너럴 필드)은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베스트 뉴 아티스트(신인상) 등 총 4개 부문이다.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는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실크소닉의 '리브 더 도어 오픈'(Leave The Door Open)에게 돌아갔다.
정 평론가는 "실크소닉이 제너럴 필드에서 올해의 레코드와 노래를 둘 다 받은 게 의외였다. 둘 중 하나는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리브 더 도어 오픈'이 완성도가 뛰어난 노래이긴 했지만, 실크소닉이 하는 음악을 그래미가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미의 선호도가 보이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 저널리스트는 두 개 부문을 휩쓴 실크소닉을 오늘 그래미의 주인공으로 봐도 된다고 평했다. 그는 "앨범상이라는 최고 영예는 존 바티스트가 가져갔지만 사실상 실크소닉이 진짜 주인공 같다. 1960~1970년대 소울 음악을 지금으로 가져왔고 트렌디한 면과 완성도 양쪽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앨범이다. 존 바티스트도 그렇지만, 그래미의 (음악) 취향을 드러낸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굿 포 유'(good 4 u), '드라이버 라이선스'(drivers license)' 데자부'(deja vu)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내며 무서운 신예로 주목받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본상 4개을 포함해 총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중 본상 부문에서는 신인상인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만 상을 탔다. 2020년 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빌리 아일리시와 같은 기록을 쓰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나왔으나, 빗나간 셈이다.
올해 시상식은 수려한 무대로도 호평받았다. 레이디 가가는 '러브 포 세일'(Love for Sale)과 '두 아이 러브 유'(Do I Love You)를, 존 바티스트는 '프리덤'을,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드라이버 라이선스', 빌리 아일리시는 '해피어 댄 에버'(Happier Than Ever), 존 레전드는 '프리'(Free), 실크소닉은 '777', 저스틴 비버와 기브온&다니엘 시저는 '피치스'(Peaches) 무대를 꾸몄다.
그러면서 "레이디 가가의 무대가 참 멋졌다. 빅 밴드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무대예술인 것 같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무대 라이브를 같이하지는 못했으나 토니 베넷 영상이 계속 등장했는데 존경의 의미로 읽혔다. 또, 허와 트래비스 바커가 꾸민 록 사운드 무대를 통해 2000년대 록 음악이 떠오르는 최근 경향을 잘 반영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보통 그래미 무대는 여타 케이블 시상식보다는 정적인 편이다. 올해도 '파격'의 무대는 없었지만 공연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다. 방탄소년단의 공연도 좋았다. 처음 (뷔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다 같이 나와서 군무를 펼치는 구성도 좋았다. 무대 면에서도 흡족한 시상식이었다"라고 바라봤다.
지난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통산 10번의 1위를 차지한 영어 싱글 '버터'(Butter)로 2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가 된 방탄소년단은 시상식 초반 특색 있는 무대를 꾸며 시선을 끌었다. '버터처럼 부드럽게, 비밀스러운 악당처럼, 갑작스러운 문제처럼 터져 네 맘속으로 잠입할 거야'라는 가사에서 영감을 받아 시상식에 잠입한 일곱 멤버가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콘셉트로 무대가 진행됐다.
진은 관제 센터에서 명령을 내렸고, 정국은 공중에서 메인 무대로 내려왔으며, 지민, 제이홉, 슈가, RM, 뷔는 참석자들 자리에 있다가 차례로 무대에 등장했다. 뷔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귓속말을 하고 카드를 정국에게 던지는 제스처로 호응을 이끌었다. 레이저 퍼포먼스와 재킷을 활용한 역동적인 댄스 브레이크, 댄서들과의 단체 안무 등이 어우러진 방탄소년단의 '버터' 무대는 빌보드가 선정한 '올해 그래미 무대' 1위를 차지했다.
이 저널리스트는 "무척 좋은 음악들이 상을 받았고, 반전 메시지를 던졌으며, 최근의 트렌드를 훌륭하게 반영했고, 슈퍼스타들이 아주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 여러 가지가 무난했고, 특별히 엄청나지는 않았지만 기본을 잘 지켰기에 인상적인 시상식이었다"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 역시 "수상 결과나 무대 모두 근래 본 그래미 어워드 중 가장 만족스러웠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