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문제가 국내 금융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소로 지목된 가운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그 해법으로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차례 반복했던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진단엔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기류지만 나랏돈이 필요 이상으로 투입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4차례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새 정부로 넘어온 '부실위험'
현 정부가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 피해 상황을 고려해 실시한 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는 6개월씩 네 차례 연장을 거쳐 오는 9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해당 지원을 받고 있는 대출 규모는 올해 1월말 잔액 기준 133조4천억 원으로, 대상자는 55만4천 명에 달한다. 금융위는 지난달 지원 조치를 9월까지 한 차례 더 연장하면서 "세 차례의 연장조치에 따른 2년 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변이 재확산 등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영업상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연장을 요구한 점도 작용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부실 우려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자영업 가구 가운데 적자가구는 약 78만 가구로 추정된다. 소득에서 필수지출과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뺀 값이 마이너스인 가구가 전체 자영업 가구의 16.7%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은은 "향후 대출금리 상승, 금융지원·완화 조치의 정상화 등으로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경우, 소득여건 개선이 더딘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그동안 누적된 부실위험이 현재화 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급한 불 껐지만 근본적 해결책 필요"…인수위, '배드뱅크' 검토
해당 리스크 해소법 찾기가 새로 출범할 정부의 주요 당면 과제로 부각되면서 인수위에선 '배드뱅크 조성'이 돌파구 격으로 검토되고 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분과별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지원 연장 조치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안타깝게도 6개월 시한부 생명 선고와 다름없다"며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배드뱅크는 부실채권을 매입해 전문적으로 관리·처리하는 특별 기금이다. 은행으로부터 채권을 사들인 뒤 채무자 상황에 따라 채무와 상환 기한을 재조정해 연착륙을 지원하는 구조다. 이번에 언급된 배드뱅크 구상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가운데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긴급구제식 채무조정 방안 적극 추진' 방안을 구체화 한 것으로, 안 위원장은 "주택담보대출에 준하는 장기간에 걸쳐, 저리로 연체된 대출을 상환할 방안을 관련 분과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했다.
배드뱅크는 역대 정부에서도 자주 '부실채권 해결사'로 활용돼왔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발생 후 부실채권정리기금를 설치, 100조 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조성한 '신용회복기금'과 박근혜 정부 가계부채 종합대책 차원에서 마련된 '국민행복기금'도 배드뱅크 사례로 꼽힌다. 이 때마다 많게는 수십조 원의 재정 투입이 이뤄졌다.
"기존 배드뱅크 개념과 달라야…'호실적 은행' 과도 지원 경계" 조언도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대출 문제와 관련한 금융지원 연장 조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국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공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먼저 대출만기 연장·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 종료 시 부실채권 규모가 얼마나 될지 세밀하게 산정해 이를 토대로 재정 투입 계획을 보수적으로 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은 지원 조치 연장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출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분들에 대한 구제는 결국 재정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배드뱅크 형태로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며 "다만 부실채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명확하게 솎아내는 것이 키포인트"라고 말했다.
배드뱅크 조성시 시중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가격을 통상적인 매입 시장 유통가보다 높게 잡아선 곤란하다는 조언도 있다. 자칫 대출 이자 이익으로 호실적을 내고 있는 은행의 손실을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가 돼선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만약에 배드뱅크를 만들 거면 기존 개념과는 확실히 달라야 한다"며 "전통적, 통상적 배드뱅크의 개념은 부실로 인해 은행의 건전성이 흔들릴 때 이것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랏돈으로 부실채권을 비교적 후한 가격에 사들이는 것이었다. 결국 은행 부실을 막기 위한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지금은 은행 실적이 좋아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으로, 정부가 과도하게 은행을 지원할 이유는 없다"며 "배드뱅크가 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원래 가격의 몇 퍼센트에 사들일지가 핵심인데, 적절히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통상적인 부실채권 매입 시장가격보다는 소폭 올려서 사들일 순 있겠지만, 과도하게 후한 값을 쳐주고 사들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에서 싼 값에 부실채권을 사들인 뒤 추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각하는 것도 효과적인 자영업자 지원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