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야구와 정치, 돌고 도는 것

"왜 야구에 열광하느냐?" "인생과 닮아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절대강자, 절대권력은 없어
우승컵과 권력은 둥근 공처럼 돌고 돈다
내일 개막 프로야구, 출범 앞둔 새정부에 거는 기대감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모기업 NC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집행검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자타공인 야구광이다. 인생코드를 야구라고 자부한다. 어린시절 부친의 영향으로 AFKN을 통해 메이저리그를 봤고 박찬호가 활동하던 90년대 말에는 당시만 해도 드물던 메이저리그 전문가를 자처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최고의 즐거움은 야구보기였다.

웬만하면 필자가 응원하는 팀의 홈 전(全)경기 직관을 목표로 했고 주말 원정경기 응원도 가능하면 따라갔다. 심지어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기 위해 원정관람을 가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야구덕후'를 넘어 직업이 언론인이 아니라 야구팬이라 불릴 만 하다.
 
그러나, 야구 전문기자로 일할 기회는 없었다. 기자 경력 30여년의 자산은 대부분 정치부 기자 시절 얻은 일천한 경험에 두고 있다.

때문에 주위에서 "왜 그토록 야구에 열광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인생과 닮아서"다.
 
야구는 힘과 기술이 지배하는 다른 종목과 완전히 다른 스포츠다.

운동능력도 중요하지만 지략과 멘탈이 절대적으로 경기결과를 좌우한다.

감독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종목이 야구다. 특히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한다.

감독은 투수와 야수교체 시기를 결단해야 하고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투수와 야수들은 경기상황에 맞는 투구와 스윙을 해야하고 너무 소극적이어서도 안되고 감정에 휩쓸려 경기를 망치는 플레이를 해서도 안된다.

특히, 개인 기록만을 위한 경기는 금물이다.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도 프로야구에서 나왔다.

딱 인생과 마찬가지다. 승부를 걸 때는 걸어야 하지만 절제할 때를 알아야 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독불장군식 회사생활은 개인도 망치고 조직도 망친다.
 
연합뉴스
야구는 인생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정치의 영역과 가장 많이 닮아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많이 회자되는 '희망고문' '정신승리' '게임체인저' 등은 프로야구팬들 사이에서 움튼 용어다.

0.73%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한 집권여당이 스스로를 위로한 '졌잘싸'란 말도 프로야구에서 왔다.
 
정치부 기자를 하는 동안 수많은 권력의 부침을 보아왔다. 권력으로 가는 길에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 정치인도 봤고 본인의 형편은 둘러보지 않고 무리수를 던지다 정치생명까지 잃는 경우도 봤다.
 
프로야구 드래프트 1지명 선수임에도 프로에 와서는 그저 그런 선수로 뛰다 사라진 선수가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한 선수도 있고 프로선수 출신인 부친의 피를 물려받아 대선수로 성장한 선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권에도, 좋은 집안 환경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있고 밑바닥에서 인생승리의 신화를 써낸 정치인이 있다.

혼자 잘났다고 설쳐대는 정치인이 있었고 정치적 잠재력이 엄청남에도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 인물도 적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프로야구와 한국정치를 보면서 느낀 가장 닮은 공통점은 '절대강자, 절대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공이 둥글 듯이 우승컵과 권력은 돌고돈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요란한 집행검 세리모니를 선보였던 NC다이노스는 지난해 가을야구도 가지 못한 채 7위로 쓸쓸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 우승팀인 기아타이거즈는 오랫동안 바닥권에서 헤맸고 한때 왕조시대를 열었다는 삼성과 두산, SK(현 SSG)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적도 많다.

필자가 응원하는 팀도 한 때 왕조시대를 열었지만 지금은 프로야구계에서 가장 문제아적 팀으로 낙인을 찍힌 상태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연합뉴스
권력도 돌고돈다. 화무십일홍에 권불십년일 뿐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이제 보수와 진보가 10년이 아닌 5년 만에 정권을 주고받을 만큼 역동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

절치부심 끝에 정권을 되찾은 국민의 힘은 언제든 권력을 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겸손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권력과 국정 운영을 해야할 것이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은 왜 패배했는지 성찰하고 다시 정권을 되찾을 전력 보강에 나서야 한다.
 
끝으로, 프로야구에 미쳤던 한 청와대 수석의 일화를 소개한다. 한때 실세로 꼽혔던 이 수석은 저녁시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와중에도 고향팀의 경기상황이 궁금해 휴대폰으로 스코어를 몰래몰래 확인하다가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다고 한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그는 청와대 수석을 끝으로 학계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계속 정치를 하거나 입각을 권했지만 그는 "나는 이제부터 야구를 보겠다"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지만 권력이 교체된 이후에 어떤 정치적 화도 입지 않았다.

그는 "일을 할 때 항상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개인의 성과를 앞세우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2022년 프로야구가 드디어 2일 개막한다. 올 시즌은 코로나를 털고 전 경기장에 관중입장이 100% 허용된다. 새 정부도 한 달 뒤 출범한다.

복사판인 프로야구와 정치판에 원망과 증오보다 환호와 응원의 함성이 넘치길 기대한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