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시 대사는 "기시다 총리와 윤 당선인의 통화는 매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고, 저희로서도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날 분위기는 아이보시 대사의 한국어 실력을 놓고 덕담이 오가는 등 훈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바로 다음날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 교과서를 발표함으로써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찬물을 끼얹었다. 관련 시민단체가 "역대 최악"이라 개탄할 정도로 왜곡 수준이 심각했다.
뒤통수를 맞은 격인 윤 당선인은 머쓱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면 저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호언했던 한일관계의 실체를 절감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행태는 전혀 새롭지 않다. 2019년 기습적인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일제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마찬가지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이쯤 되면 문제는 오히려 당하는 쪽에 있다. 빤히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검정심사가 매년 3월말 이뤄진다는 것은 사실상 예고된 일정이다. 외교부는 이미 십수년째 이맘쯤이면 일본에 대한 항의성명을 발표해왔다.
윤 당선인이 일본대사 접견에 앞서 일본 측 사정을 사전에 알았든 몰랐든 비판을 면키 어렵다. 몰랐다면 외교적 무지이고, 알고도 만났다면 과신이나 만용에 가깝다. 어찌됐든 기대를 모았던 한일관계는 첫 매듭부터 삐걱거리게 됐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침묵을 택했다. 당선인 측은 "현재 일본의 외교 파트너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 정부이며, 당선인 신분으로서도 정부가 밝힐 개별 외교사안을 먼저 존중하는 것이 도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한일관계 같은 민감한 문제일수록 당당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게 지도자의 몫이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왜 북한과 중국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느냐'고 했던 비판을 일본으로 말미암아 되돌려 받지 않으려면 할 말은 해야 한다. 외교에서도 '내로남불'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