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인과 그 주변을 둘러싼 팬덤(fandom) 현상은 계속된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팬 카페에서 아빠와 동물 등으로 불린다. '잼칠라'는 이 전 후보를 닮은 동물 친칠라와 이재명의 합성어, '이잼'은 이재명의 줄임말로 팬카페에서 이 전 후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비록 대선에서 패배의 쓴 잔을 받아들었지만, 이후에도 지지층의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대선 전엔 '원더건희'와 '건다르크'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인 김건희씨 팬카페에서 김씨는 80년대 고전 영화 원더우먼 속 '히어로'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소비된다.
'재명이네 마을'에선 2030 여성들이 자신을 '개딸'(성격이 드센 딸)로, 이 후보를 '이잼 아빠'로 칭하며 활동한다. 반면 '건사랑'의 경우 주 팬층의 연령대가 높고, 남녀 비율이 엇비슷한 편이다. 카페 운영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60대이며 여성 비율이 조금 더 높다고 밝혔다. 이들은 팬카페 내에서 글과 밈(meme) 등을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며 '팬덤 문화'를 형성한다.
이 같은 팬덤 정치가 지지자들에게 결속감과 효능감을 주고 정치적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반면 팬덤이 과거에 비해 한층 협소해져 외연 확장이 어렵고 타 진영에 대한 배척과 배제를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잼 아빠'와 '건다르크'…지지자 "정치적 효능감 느껴"
팬카페에 속한 지지자들은 자신들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는 특징을 보인다. '재명이네 마을'에선 2030 여성들이 자신을 개딸, 이재명을 아빠라고 지칭하고, 4050 지지자들은 자신을 '개삼촌', '개이모'라고 부른다.평소 이 전 후보를 '재명이' '잼칠라(이재명+친칠라)로 부른다는 지지자 A(28·여)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후보를 '아빠'라고 부르고, '이재명의 개딸들'로 자신들을 규정 지으면서 40~50대 이재명 지지자들과도 친해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후보를 지지하는 2030 여성들은 커뮤니티 등 온라인을 통한 정치 참여에 재미와 효능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A씨는 "대선 뿐만 아니라 (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정치 효능감을 다시 느꼈다"며 "지지자들이 문자 총공(총공격), 후원금 입금, 시위 등 다방면에 힘쓴 결과"라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B씨는 "커뮤니티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2030 여성들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한편 '건사랑'에선 주 연령층이 60대인 만큼 김건희씨를 고전 영화 캐릭터 등에 빗대 '원더우먼', '건다르크', '여사님'이란 단어로 부르며 결속을 다지고 있다.
'건사랑' 회원인 40대 C씨는 인터뷰에서 "팬카페에서 여사님은 김씨를 부르는 애칭"이라며 "정권이 바뀌면서 김씨와 윤 당선인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팬카페 회원이 곧 10만이 될 것"이라며 "정권 시작할 때까지 활동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전후로 더 잘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건사랑' 이승환 대표는 "김건희 여사가 여성으로서 인격권이 공격당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감과 정권교체 의지로 초반에 많은 분이 모였다"며 "대통령만 바뀌었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인식에 집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상대 진영인 이 전 후보를 중심으로 보이는 '개딸' 팬덤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재명이네 마을'에서도 '개딸'들 하면서 집결하는 걸 보고 우리도 결집해야 한다고 느낀다"며 "특히 용산 집무실 이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지지 집회를 여는 등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치 거부" 팬덤 정치…타 진영 배제 가속화 우려도
팬덤 정치에 열광하는 이들은 '정치적 효능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심을 발휘하는 셈이다. 실제 지난 24일 민주당 원내대표에 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선출되자, '재명이네 마을'엔 "우리가 이겼다", "모이니까 된다"란 실시간 글이 올라왔다. '건사랑'의 경우 김건희씨를 둘러싼 숱한 의혹 속에서도 끝까지 지지층을 결집해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이 묻어있다.이를 감안하면 팬덤 정치가 정치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란 긍정적인 시각이 제기된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핵심 지지층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팬덤을 통해 지방선거 등에서 깜짝 스타들이 나올 가능성도 생겼다"며 "예를 들어 박지현 씨 같은 경우에도 많은 팬이 생겼듯이 팬덤 정치로 깜짝 스타가 정치로 입문하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팬덤 정치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동력보다는 각 진영의 장벽을 공고히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천대 이준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절대 지지층, 팬덤이 과거와 달리 협소해지고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절대 지지층이 태극기 부대로 분화되긴 했지만, 처음엔 팬덤이 넓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이어 "협소해진 팬덤은 앞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것이 득(得)이 될지 실(失)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절대 지지층이 이대남 이대녀 구도를 고착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팬덤 정치가 일종의 '셀럽'이 된 정치인을 독점하고 다른 진영을 배제하는 도구가 될 경우 진영 대립, 갈등으로 이어져 부정적 경향이 극대화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인 이른바 문파'가 정치인을 향한 '문자 폭탄' 등으로 세력을 과시했던 현상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실제 상대 진영을 배척하는 모습은 양측의 팬카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재명이네 마을'에선 민주당 새 원내지도부에게 각종 법안 처리를 요구하며 "협치 따윈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사랑'에선 민주당과 이 전 후보와 가족 논란 게시판을 만들어 상대 진영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팬덤 정치가) 잘못한 지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라 생각하고 고치지 않는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혐오와 배제의 정치를 가속하기 때문에 공동체 차원에서는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