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부 경남의 '낙동강 전선'이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과 묘역, 그리고 그의 정치적 동지인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과 사저가 있는 곳이 바로 '김해·거제·양산'이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인접해 있고, 정치 성향도 비슷해 '낙동강 전선(벨트)'이라고 불린다.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분 좋다"라며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향에 귀향한 이후 김해를 중심으로 진보 세력이 결집했고,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면서 김해는 양산·거제와 함께 보수텃밭인 경남에서도 민주당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다.
현재 3명의 시장도 민주당 소속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지방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 귀향을 앞두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다.
그런데 민주당에게 정치적 성지로 꼽히는 이곳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최근 치러진 대선 성적표가 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대 대선에서 경남 18개 시군 중 어느 한 곳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이긴 곳이 없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1~3위 지역이 김해·거제·양산, 그리고 유일하게 득표율이 40%를 넘겼다는 게 위안거리다.
이렇다 보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동강 전선'은 막판까지 판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 예상된다. 이제는 민주당은 '뺏길까'라는 걱정이 생겼고, 국민의힘은 '뺏을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우선 김해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46.72%)이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26.17%)를 큰 표 차로 누르고 압승한 데 이어 201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김경수 전 지사(65.02%)가 김태호 후보(31.38%)보다 두 배 이상 표를 얻은 곳이다.
김해는 2010년 6월 5회 지방선거부터 2018년 7회까지 보궐선거를 포함해 4회 연속 민주당이 시장을 차지했다. 7회 지방선거에서 허성곤 시장(62.65%)이 자유한국당 정장수 후보(28.32%)를 무려 35%p 가까이 누르고 연임을 이어갔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여유롭게 당선된 김해 갑·을 국회의원(민홍철·김정호)뿐만 아니라 도의원 7명까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러나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윤 당선인(49.33%)과 이 후보(46.23%)의 득표율 차이는 도내 시군 중 가장 적은 3.1%p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꽤 오르면서 민주당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국민의힘은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12년 만에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어, 김해는 초박빙 접전이 예상된다.
김영삼·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조선 빅3 중 2곳(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포진해 있는 조선업의 도시 거제도 마찬가지다.
통영·고성과 함께 '조선 벨트'에 속한 거제는 노동자와 젊은 층이 많아 진보 성향이 짙은 곳인데,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인(49.84%)이 이재명 후보(44.69%)를 5.15%p 차로 이겼다. 김해 다음으로 표 차이가 적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45.71%)이 홍준표 후보(25.95%)를 크게 따돌렸고, 201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김경수 전 지사가 득표율 60%를 넘겨 김태호 후보를 25%p 차로 압승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년 전 총선에서도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서일준 후보가 민주당 문상모 후보를 12%p 차로 이기는 등 민주당 바람이 누그러지는 양상이다.
그동안 거제시장 자리는 국민의힘 전신인 보수당이 독차지하다가 지난 7회 지방선거에서 '탄핵 대선'에 이은 파란 돌풍이 거제까지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민주당 변광용 후보가 6.84%p 표 차로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민주당 시장의 재선이냐, 국민의힘의 탈환이냐, 여기도 접전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내는 곳이자, 경남보다 부산·울산과 가까워 정치적 온도의 차이가 있는 양산 역시 민주당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 지역이다.
1·2회 무소속, 3회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4회 무소속, 5·6회 한나라당·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이어 7회 지방선거에서 김일권 시장(56.26%)이 자유한국당 나동연 후보(43.73%)를 10%p 이상 따돌리면서 처음으로 민주당이 양산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19대 대선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41.94%의 득표율로 홍준표 후보(29.57%)를 여유롭게 제쳤고, 2018년 경남지사 선거에서도 김경수 전 지사(57.03%)가 김태호 후보(38.49%)를 20%p 가까운 표 차로 압승했다.
그러나 2년 전 총선부터 표심 변화가 감지됐다. 갑 선거구는 당시 미래통합당 윤영석 의원(56.99%)이 민주당 이재영 후보(42.03%)를 15%p 가까이 앞섰고, 을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김두관 의원(48.94%)이 미래통합당 나동연 후보(47.26%)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68%p차 승리를 겨우 따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도내에서 세 번째로 이재명 후보(42.18%)의 득표율이 많은 곳이지만, 윤석열 당선인(53.52%)과 이 후보의 표 차는 10%p 이상 벌어졌다. 국민의힘이 4년 만에 탈환에 자신을 갖는 이유다.
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를 비롯해 도내 18개 시군 중 창원·고성·통영·남해와 함께 역대 최다인 7곳에서 시장·군수를 배출했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김해·거제·양산마저도 흔들리는 이때를 노리는 국민의힘은 뺏긴 단체장 자리를 모두 가져오겠다며 벼르고 있다.
다만 지방선거를 20여 일 남기고 5월 10일 고향 양산으로 내려오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선거 9일 전인 23일 엄수될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이 얼마나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킬지가 최대 변수다.
특히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40%대에 달하는 철옹성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귀향 효과가 절체절명의 '낙동강 전선'에 상당한 화력으로 나타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 후 진보 세력의 결집으로 이어졌던 효과가 이번에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의 반영이다.
문 대통령이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한 만큼 오는 23일 13주기 추도식에는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봉하마을을 찾을 것으로 보여 민주당으로서는 세 결집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뺏고 뺏기는' 표의 전쟁, 경남은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