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보고 되고 있는 가운데 이달 중순 남극 동부 지역에서 이탈리아 로마 크기만 한 빙붕이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미국 국립빙하센터(USNIC)는 약 1200㎢의 면적을 지닌 '콩거(Conger) 빙붕'이 이달 중순께 붕괴했다며 이를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콩거 빙붕의 면적은 로마 전체 크기와 맞먹는 것이다.
빙붕은 남극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내륙 빙하가 바다로 밀려와 녹지 않도록 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 빙붕이 줄어들면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해수면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
콩거 빙붕이 무너져내린 당시는 남극 동부가 이례적으로 높은 기온을 기록했던 때였다. 지난 18일 기준 남극 동부 내륙에 있는 '콩코르디아 기지'의 관측소는 -11.8℃까지 치솟아 평년 기온보다 40℃ 이상 높았다.
과학자들은 이번 붕괴가 최근 들어 빠르게 진행됐다며 남극 동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우즈홀 해양 연구소에서 일하는 지구행성학자 캐서린 워커 박사는 콩거 빙붕이 2000년대 중반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그 속도가 2020년 초 전까지는 점진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 4일 기준으로 빙붕의 면적이 지난 1월과 비교해 절반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워커 박사는 콩거 빙붕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이번 일은 라르센 빙붕B가 무너졌던 2000년대 초 이후 남극 대륙을 통틀어 발생한 중요한 붕괴 사건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남극 반도의 라르센 빙붕B는 2002년 급속도로 붕괴하면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연구조교수이자 빙하연구가인 피터 네프는 남극 동부에서 작은 빙붕이 붕괴한 것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네프 조교수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얼음과 암반의 구조 차이로 남극 동부는 남극서부와 같은 속도로 얼음이 녹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남극대륙에서도 얼음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극 동부는 최근 들어 빠르게 녹고 있는 서남극에 비해 위협을 덜 받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네프 조교수는 한편으로는 "이번 빙붕의 붕괴가 이달 관측된 중순 '대기천' 현상에 따른 고온과 관련이 있다면 그 과정에 대한 추가 연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남극 동부의 고온 현상의 원인으로 대량의 수증기가 대기 중에서 강처럼 긴 띠 형태로 움직이는 대기천 현상을 지목한다. 이 대기천은 지난 15일께 남극 동남부 해안 지대에 상륙해 호우를 쏟아냈고 이로 인해 인근의 빙하가 녹아 대륙 안쪽까지 습기가 퍼졌다.
마침 이례적으로 강력한 열돔 현상이 나타나 이런 습기가 다른 곳으로 퍼져 해소되지 못한 채 남극 동부 지역에 집중되면서 열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과학자들은 이번 콩거 빙붕 붕괴가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은 없으리라고 전망하면서도 위기의 전조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워커 박사는 "아마 큰 여파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의 징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호주남극과학우수센터(ACEAS)를 이끄는 매트 킹 교수도 "앞으로 기후온난화와 함께 더 많은 빙붕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상당히 상승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