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만남 대신 연일 인사, 공약을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신구 권력 갈등에는 앞서 무산된 회동을 전후로 한 양측의 불신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4일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 등 당선인 공약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반대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무례하다"며 이날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 일정을 연기했다.
인수위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40여일 후 퇴임할 장관이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지난 16일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무산된 뒤 한국은행 총재 등 인사,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등을 둘러싼 각종 갈등의 연장선이다.
이러한 신구 권력의 갈등엔 서로를 향한 불신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지방선거를 의식해 이러한 행보를 벌이고 있다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원활한 인수인계에 협조하기는커녕 방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인수위 전반에 있다"며 "지방선거를 의식해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걸면 이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인수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오늘 메시지는 586 부패 정치인의 꼭두각시 노릇을 보인 셈"이라며 "문 대통령 스스로 여론전의 늪에 빠지는 것"이라고 수위를 높여 비판을 가했다.
청와대는 반대로 '협상 없는 회동'을 고집하면서 당선인 측의 "아무런 성과 없이 만날 수는 없다"는 입장에 경계 태세를 높였다.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이날 참모회의가 끝난 뒤 "답답해서 한 말씀 드린다"며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인데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하고 참고할 만한 말을 주고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하냐. 무슨 회담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이 청와대 인사를 '공공기관 알박기'에,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반대를 '당선인 진의 왜곡'으로 빗대는 등 강경한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집권 전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민 민생과 다소 동떨어진 특정 이슈들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윤 당선인이 당선 직후 누릴 수 있는 '의제 주도권'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 교체의 가장 큰 동력으로 꼽힌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초반부터 용산 이전 등 이슈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정비사업에 변수를 준다는 점에서 서울 민심에도 좋을 리가 없다"며 "이미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도 있었는데, 당선인이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직진하는 스타일이라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업무보고가 예정된 25일에도 감사위원 인사를 둘러싼 신경전이 예고돼 있다. 인수위 최지현 수석부대변인은 "임기 4년의 감사위원을 당선인 확정 후 현 정부가 임명한 사례가 지난 15년 동안 없다"며 "인수위 차원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위해 이를 지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 당선인 측은 현재 공석인 감사위원 2명 모두의 인선에 당선인 측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전날 북한의 ICBM급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참모회의에서 국가안보실장에게 "당선인에게 오늘 상황과 대응 계획을 브리핑하고, 향후에도 긴밀히 소통하라"고 지시한 것이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에 난색을 표했던 만큼, 북한의 강도 높은 도발에 신구 정권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를 두고 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고 있는 윤 당선인 입장에서도 이같은 계기를 활용한다면 순조롭게 이슈를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