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돌연 취소하면서 그간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을 반대해온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사실상 퇴짜를 놨다. 반면 김오수 검찰총장은 윤 당선인의 기조에 발 맞추며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노선에서 선회했다. 윤 당선인 공약을 둘러싼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엇박자가 평행선을 달리듯 지속되는 양상이다.
인수위는 24일 긴급기자회견문을 내고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한데 따른 조치다. 인수위는 "박 장관이 어제 윤 당선인의 공약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며 "40여일 후에 정권 교체로 퇴임할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당선인의 공약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어 "행정 각 부처의 구성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존중하고 공약 이행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책무가 있다"며 "법무부 업무보고는 무의미하고, 서로 냉각기를 갖고 숙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해 이른 시간 법무부에 업무보고 일정의 유예를 통지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공약 반대 입장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앞서 박 장관은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부문 주요 공약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 예산편성권 독립 △직접 수사범위 확대 등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언론과 인터뷰에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가 하면, 업무보고 전날인 23일에는 기자간담회까지 갖고 같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떨어진 인수위의 갑작스런 업무보고 퇴짜에 박 장관은 침묵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업무보고 유예를 통지받고 법무부로 출근하는 길에 "변수가 있는 거 같다. 저쪽(인수위)에 한번 알아보라"고 각을 세우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이후 인수위의 강도 높은 기자회견문에도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수위의 추가 일정 통보도 없었고, 공식 입장을 낼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달리 윤 당선인의 공약에 '코드'를 맞춘 대검찰청은 24일 예정대로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당초 인수위는 법무부로부터 대검의 의견까지 한번에 업무보고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두 기관의 입장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개별 업무보고로 바꿨다.
이날 대검의 업무보고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대검은 윤 당선인의 주요 공약에 공감하면서 인수위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미 대검은 법무부에 전달한 업무보고 자료에서도 전반적으로 윤 당선의 공약과 궤를 같이 했다. 심지어 대검이 내놓은 일선 형사부의 직접수사 확대 기조는 박 장관이 공들여 추진한 직제개편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용들은 모두 김오수 검찰총장이 재가했다고 한다.
김 총장의 '윤석열 코드 맞추기'로 어색해진 법무부와 대검 사이 기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완수를 목표로 삼고 있는 박 장관으로서 대검처럼 윤 당선인의 기조에 맞춰 업무보고 내용을 수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퇴 압박에 놓인 김 총장의 경우 '검찰 권한·위상 확대'를 강조하는 업무보고를 계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장관과 김 총장, 법무부와 대검의 평행선이 봉합되기 어려운 이유다.
한편 법무부 내부에서는 박 장관이 개인 의견을 법무부 전체 입장처럼 윤 당선인에게 반기를 드는데에 불안함을 느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수위가 대검 업무보고 직후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인수위원들은 종래 일부 검사들이 보인 정치적 행태를 강하게 질책했다"는 부분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일각에서는 법무부 업무보고를 두고 불거진 인수위의 불만이 윤 당선인의 총장 재직 시절 징계국면을 주도한 일부 검사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