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4일 근로복지공단이 한국전력과 전기업체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2017년 한국전력으로부터 도로 개설에 따라 전선을 제거하고 전신주를 철거하는 배전공사를 도급받았다. A사 직원들은 전선을 걷어내면서 전봇대 본주와 지주(본주를 지탱하는 전신주)에 연결됐던 밴드도 없앴다. 전봇대 광케이블 철거공사를 통신사로부터 도급 받은 B사 작업팀장은 전신주 지지 밴드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팀원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현장에 도착한 한 직원이 전신주로 다가가다 갑자기 쓰러지는 전신주에 머리를 다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급여 2억2천여만원을 지급한 뒤 한국전력과 A사에 급여 전액을 구상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는 사고에서 30%의 과실 책임이 있는 재해 노동자가 1천만원의 손해를 입었고 근로복지공단이 유족급여로 800만원을 지급했다면, 1천만원에서 30%를 덜어낸 700만원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이 가해 회사에 구상권을 청구해 왔다. 이런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할 경우 유족 측은 별도로 가해 회사에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없다고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유가족들은 기존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받던 800만원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가해회사로부터 140만원을 추가로 받아낼 수 있는 법률적 길이 열린 셈이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은 140만원 만큼 구상권이 축소돼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대법원이 기존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지난해 건강보험공단 관련 사건 판례를 기점으로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판단한 배경에는 실질적으로 공단이 자신이 짊어질 부담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는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
재판부는 "재해 근로자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보험 급여를 하도록 하는 취지는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재보험의 책임보험적 성격의 관점에 치중했던 종래의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보험에 관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선언된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을 따르는 것이 법질서 내 통일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