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윤석열 당선인 측이 미리 용산 카드를 준비해왔다면 부리나케 청와대를 옮기는데 따른 국민적 우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며칠 사이에 갑자기 튀어나온 대안이라면 졸속도 이런 졸속이 있을 수 없다.
대통령직인수위 청와대 이전 TF의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용산 검토 시점을 '2월 중순'이라고 밝혔다. 반면 권성동 의원은 3월 15일자 경향신문 국방전문기자의 칼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겨우 1주일 사이에 빛의 속도로 대역사가 기획된 셈이다.
권 의원의 언급은 분명 윤 당선인 측에 불리한 내용이다. 바로 그렇기에 핵심 윤핵관으로서 진솔하고 용기 있는 태도로 상황을 타개해나갈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이로써 용산 이전 검토 시점에 대한 인수위의 공식 입장은 2월 중순으로 정리됐다.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아무튼 '졸속' 비판을 면할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됐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가 남는다. 용산 카드도 갖고 있었다면 왜 굳이 감출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1일 MBC에 출연해 꽤 솔직한 얘기를 했다.
"선거 과정에 용산까지 검토하면 논란이 시작될 수가 있고, 광화문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시대위원회까지 만들어서 추진했던 사안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표현한 것일 뿐이고 사실은 용산까지 넣어서 광범위하게 검토했었습니다."
위 기사의 수많은 댓글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전부터 검토했으면 대국민 사기이고, 최근에 검토한 것이면 졸속이고…"가 그나마 점잖은 일침이다.
졸속과 사기, 어느 쪽이 나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수위가 이번 일로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됐다는 사실이다.
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나온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불통이 됐다. 인수위는 결단의 리더십이라 포장했지만 실은 제왕적 행태였다. 인수위의 가장 큰 동력, 국민의 신뢰는 그만큼 내려갔다. 정치에서도 최선의 방책은 정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