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신·구 권력 간의 치킨게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권력을 이양하는 측과 넘겨받는 세력 간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측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인사권 문제 등을 놓고 의견 차이를 노출하며 회동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당 내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 간에도 이런 충돌은 없었고,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간에도 겉으로는 순조롭게 권력이양이 이뤄졌다.
 
갈등은 윤석열 당선자 측으로부터 촉발됐다. 윤 당선자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로는 절대 안들어간다"며 대통령실의 이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재고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절대'라는 강경한 표현까지 써가며 청와대 입주를 거부하는 것이 과연 이 엄중한 시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다수의 군 출신 인사들이 안보 상의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힘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안보와 경호 상 취약성 뿐 아니라, 국방부와 합참의 이전이 일반 사무실 이전처럼 짐만 들고 옮기는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합참에는 전 군을 그물처럼 연결하는 상황실이 운영되고 있고, 청와대 역시 고도의 안보 신경망이 이어진 허브와 같은 곳이다. 일부에는 백악관에서 팬터곤을 비우라고 하는 요구나 다름없다는 비유까지 하면서 무리한 주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 당선자는 측근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당선자로서 내린 첫 번째 결정이 '불통'과 '졸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면, 앞으로 윤 당선자가 어떤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할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권 행사와 관련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의 회동이 불발된 것은 한국은행 총재 등 주요 인사들의 인사권 행사에 윤 당선인 측이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던 청와대가 강경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인사권과 관련된 문제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의 일방적인 결정과 진행도 문제지만, 권력이 넘겨줘야 할 청와대의 강경한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이전에 따른 예비비 지출에 반대하면 문 대통령 임기 내에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은 불가능하다. 이유야 어찌됐던 임기 두 달을 남겨 놓은 정권이 마지막까지 몽니를 부리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 당선인 측에서는 청와대가 협조를 거부한다면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통의동에서 대통령 집무를 시작하겠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 통의동 사무실은 방탄유리가 없다는 다소 유치한 발언까지 하고 있다.
 
22일 오전 윤 당선인측 대변인이 "청와대에서 원하는 뜻을 전달해주면 숙의해 볼 것"이라며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윤 당선인의 의지가 워낙 강경한 만큼 갈등 국면이 해소가 될 지는 의문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대통령 집무실 국방부 이전에 대해 58%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당선인의 목표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것 이라면,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받드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대선 기간 동안 북한에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며 그토록 '안보'를 목청 높게 외쳤던 윤 당선인이라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으로 안보 위기를 스스로 초래하는 모순된 상황을 만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안보 불안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은 권력교체기에 이런 갈등이 고조된다면 국민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는 여전히 창궐하고 있고, 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물가는 치솟고 서민 경제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청와대 이전이 그토록 '절대' 관철시켜야 할 절박한 과제인지 다시 돌아보기 바란다.
 
이 벼랑 끝 싸움에서 승자는 없다. 오직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바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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