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남매 키우며 9년간 모은 97만원…"산불피해 복구되길"

신문배달·식당일 하며 후원금 저축한 돈…"내년에도 기부할 것"

19일 오후 김태자(53·가운데)씨 대전 자택에서 김씨가 자녀 정진서(20·김씨 오른쪽)·진우(19)씨, 월드비전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 직원들과 함께 산불 이재민 기부금 전달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남에게 신세 지고는 못 견뎌서요. 후원받을 때부터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쌓이고 쌓이다 보니 97만원까지 갔네요."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남매를 키우며 어려운 살림에 한 푼 두 푼 모은 후원금을 산불 이재민들에게 기부한 김태자(53)씨는 기부 결심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3년부터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에서 자녀들 정진서(20)·진우(19)씨의 아동 지원 후원금을 받아온 그는 "적은 금액이지만 산불로 피해를 본 아동 가정에 힘이 돼주고 싶다며"며 9년간 모아온 97만6천845원을 다시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김씨는 2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 달 후원금으로 1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다 쓰지 않고 1만원은 모아두자 해서 그렇게 통장에 (돈을) 계속 놔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아쉽고 급해서 모아온 돈을 빼서 쓸까 봐 마음을 졸이면서 안 쓰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그랬다"며 웃었다.

김씨는 세 식구끼리 넉넉지 못한 살림을 이어왔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새벽엔 신문배달을, 낮엔 부업을 했다. 고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이유는 자녀들이 낮에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는 등 몸이 성치 않아졌지만, 요즘에도 택배 배달이나 식당일 등 아르바이트는 계속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장녀 정씨는 지난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주간활동센터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후원 종료 시점에 맞춰 기부하게 됐다"며 "특수학교에서 고3인 아들의 통장에 들어오는 후원금을 모아둔 돈도 내년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머니의 기부 소식을 들은 자녀들의 반응을 묻자 "자폐증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없다"며 "아이들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많은 사람이 기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기부를 못 하는 분들도 나름대로 힘드실 테지만요. 어쨌든 저는 이렇게 기부할 기회가 닿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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