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0년 무렵까지 점진적으로 퇴출될 예정이었던 원전은 윤석열 정부에서 주력 전원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게 됐다. 그러나 애초에 원전을 퇴출시키기로 한 이유가 됐던 안전 우려나 사용후 핵연료(핵폐기물) 처리, 에너지 정의 문제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은 상황이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현실성 확보한 탄소중립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레이스 내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즉시 재개하겠다고 공약했다. 1400MW급 원전인 신한울 3·4호기는 박근혜 정권에서 확정한 사업으로, 당초 올해와 내년 각각 준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5년간 공사가 중단됐다.
윤 당선인이 공언한 만큼 올 연말 확정되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한울 3·4호기를 포함시키고 최대한 속도감 있게 건설을 진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미 고사상태에 놓인 원전 관련 중소업체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신속히 행정적 절차들을 진행해 공사가 재개됐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국내 원전은 총 24기로 이 중 18기가 운전 중이다. 가동 예정인 신규 원전은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 등 총 4기이고, 시운전 중인 신한울 1호기는 올 하반기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내년 4월 운전허가가 종료되는 고리 2호기를 비롯해 차례로 설계수명 만료를 앞두고 있는 원전들의 수명이 연장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그 방법을 두고는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거나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라고 보기 어려운 눈속임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2018년 기준 6.2%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30년까지 30.2%로 비약적으로 늘려야 하는데다, 아직 개발 단계의 기술인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US)과 국외감축량을 높게 반영해 겨우 2030 NDC 로드맵을 그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도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22.5%까지 높이는 것으로 설정했지만 주력 전원은 원전으로 32.5%를 차지하게 된다.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재생에너지보다도 원전의 탄소배출량이 적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프랑스처럼 원전을 활용해 탄소중립의 속도를 높이는 대열에 한국도 합류하게 되는 셈이다.
"울진에만 원전 10기"…에너지 불평등은 심화
산불이 원전 인근까지 번져 두려움이 컸을 지역 주민들에게 오히려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한 빠른 보상을 강조한 것이다. 원전 건설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반기는 주민도 있지만 각종 우려들까지 지울 순 없다. 울진은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안에서도 가장 원전이 많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이규봉 '핵으로부터안전하게살고싶은울진사람들' 대표는 "지금도 원전 8기가 가동 중인데(신한울 1·2호기 포함) 지역 경제가 썩 나아지지 않았다"며 "바다 등 생태계 악영향에 산불까지 고통이 더 큰 상황인데 여기에 원전을 더 짓겠다니 군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울 1~6호기까지 원전 6기가 있는 울진군 북면에는 신한울 1·2호기에 이어 신한울 3·4호기 건설까지 재개되면 원전만 10기가 모이게 된다.
만약 이번 울진 산불이 한 원전에라도 닿았다면 인근의 다른 원전들에도 여파가 미쳐,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사고가 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는 원전이 없다. 부산과 울산, 경주, 울진 등 동해안과 전남 영광 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전기를 끌어다 수도권이 소비하는 구조다. 경제적 보상을 통해 지역의 낙후한 인프라를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각종 이권을 준다지만, 주민들은 돈과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는 물론이고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방사능 피폭 피해, 사용후 핵연료 처리 부담 등은 원전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들만 떠안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원전 인근에 사는 주민 중 여성에게서는 갑상선암 발병률이 최대 2.5배 높게 나타나고 월성 원전 주변에 사는 아이들의 소변에서는 삼중수소가 검출되기도 한다.
장시원 울진군의원은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군민도 원전이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 않고 반대하는 군민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정말로 안전을 우려하는 것"이라며 "(차기 정부에서)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주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원전 수출' 등 산업은 살려야 한다?…"퇴행적 발상" 비판도
안전이나 에너지정의 문제 외에 경제적 관점에서 '원전강국' 슬로건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원전 수출시장이 제한적인 데다,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핵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은 퇴행적이라는 지적이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는 "핵발전은 초기 투자비용이 비싸고 그 비용도 계속 상승하고 있어 지금 새로 지으면 굉장히 비싼 에너지"라며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가동하는 나라가 많이 없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원전을 수출해 국가 경쟁력을 드높이는 차원에서라도 원전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허황된 꿈에 가깝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핵발전을 많이 하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미국 등은 모두 (원전을) 자체조달하고 있어 한국에 열린 시장이 아니다. 특히 프랑스·미국은 핵발전을 축소하는 추세"라고 꼬집었다.
사실상 '국내에서만' 핵발전소를 짓기 위해 엄청난 국부를 투자하게 되는 셈이다. 조 교수는 "과거 4대강 사업에 수십조원을 쏟아 부은 것이 연상된다"며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미래 생존기반을 닦는 데 써야할 우리의 귀한 자산을 핵발전에 투자하자는 것은 퇴행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