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무의미한 논쟁 되지 않으려면

[소년범 혐오를 넘어②] 촉법소년 연령 하향 찬반 논쟁
찬성 측 "중학교 마지노선으로, 흉악범은 형사처벌"
반대 측 "촉법소년 공식 통계 없어, 형사처벌은 낙인"

▶ 글 싣는 순서
①가출에서 흉악범죄까지…소년은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②또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무의미한 논쟁 되지 않으려면
(계속)

그래픽=김성기 기자
#지난해 7월 경남 양산, 중학교 1학년 A양은 밤 11시경부터 6시간 동안 손과 다리를 묶인 채 또래 중학생들에게 폭행당했다. 가출해 가해 학생들과 지내던 A양은 밤새 폭언, 구타 등 가혹 행위에 시달렸고, 피해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은 경찰 부실 수사 등으로 논란이 돼 지난해 12월 가해 학생들의 엄벌과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동의 수는 20만 명을 돌파했다. 가해 학생 4명 중 2명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라 청와대는 "신상공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놨다.
 
"(가해 학생들이) 몰래 한 것도 아니고 영상을 찍어서 소문내고 길가며 만나는 애들에게도 보여줬어요.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거예요."
 
피해자 A양을 대리하는 학교폭력 전문 권성룡 변호사는 가해 학생들이 범죄를 '자랑스러운 과업'으로 생각하는 듯했다고 CBS노컷뉴스에 전했다. 가학적인 행위를 하고 반성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태도에 여론은 분노했다. '교화'에 초점을 둔 소년법을 폐지하고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1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은 소년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화두가 되고 있다.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아동·청소년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보호처분을 받는다. 윤석열 당선인도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로 낮추자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입법에 필요한 근거 및 소년범 재사회화 방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와는 다른 아이들…흉악범죄 저지르면 형사처벌


"솔직히 심각하긴 심각해요."
 
소년보호사건 국선 보조인으로 활동하는 소년법 전문 정복연 변호사가 소년범죄 양태에 대해 말했다. 그는 "중학생이 엑스타시를 복용하거나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등 범죄 자체가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며 "아이들이 촉법소년인 점도 알아서 경찰서에 '처벌 안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온라인에서 범죄 행태를 빨리 습득하기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조금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학교 가면 사고 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마지노선을 정해야 아이들이 덜 (비행)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권 변호사 또한 "경험상 중학교에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비행에 물드는 경우가 많다"며 "연령을 초등학생들에게 한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 중학교 1~2학년과 2022년의 중1~2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통계로 봤을 때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전체 소년범 수도 감소하고 있지만, 촉법소년 비중은 늘어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소년보호재판에 넘긴 촉법소년은 1만915명이다. 범죄 유형별로 따지면 2016년부터 최근 6년간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전체의 5% 정도다.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지금 13세는 무조건 보호처분을 받기 때문에 죄질 등에 따라 형사처벌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흉악범죄를 저지른 1%의 아이들이 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오면 '황소개구리'로 변해 99%에게 악풍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소년보호재판은 일반 형사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방청할 수 없고 처분 결과도 모른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승 연구위원은 "소년보호재판은 가해자와 가해자의 변호인, 법정 판사만 있는 곳"이라며 "피해자 목소리가 안 담긴다는 건 그만큼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가 가능한 사건이 소년부로 와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연령 하향→범죄 예방? 입법 근거 통계 부족


그래픽=김성기 기자
소년범죄가 실제 흉포화됐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소년법 전문 이승우 변호사는 "이전에 비해 청소년 범죄가 흉포화됐다기보다 사람들이 예전에는 폭력으로 못 느꼈던 것들을 범죄로 인식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배상균 부연구위원도 "또래 싸움도 과거에는 애들끼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엄연한 집단 따돌림이고 온라인 폭언도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정원 연구위원은 "현재 소년보호처분이 소년범 재범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면 소년법이 바뀌긴 해야 한다"면서도 "형량을 단순히 높이는 걸로 범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14세를 13세로 낮췄을 때 실제 범죄가 줄어드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확한 촉법소년 범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없다는 점이다. 배 부연구위원은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연령이 아니어서 소년범죄 통계에 잡히지 않고 경찰청 내부 자료는 비행에 불과한 우범소년을 포함한 수치"라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년법 개정이) 증거 기반 입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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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부 재판을 8년 동안 맡아 소년범의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형법에 14세 미만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려면 형법이 개정돼야 한다"면서 "연령 하향 시 전 세계적으로 획일적 기준이 없어 각 국가 사회가 합의 하에 정해야 될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3세로 낮추면 12세 아이들이 논란이 될 텐데 그 아이들이 중범죄를 저지르면 어디까지 (연령이) 내려갈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국민 의견을 반영해서 나이가 정해지면 예를 들어 향후 50년 동안 무익한 논쟁이 없도록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년범죄 재사회화 대책 필요…사회가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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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와 별개로 전문가들은 소년범죄 방지책이 부족하다는 데 공통된 입장을 표했다. 소년보호처분을 다양화하고 보호시설을 늘리는 것이 대안으로 나왔다.

이 변호사는 "소년법상 처분 범위가 너무 좁다. 10개 처분 중 1호는 집에 가라는 것이고 6호 시설, 소년원 3개 카드에 불과하다"며 "입법적으로 판사한테 다양한 카드를 줘야지 아이들을 다 형사처벌하고 범죄자·전과자로 만들면 우리나라는 출산율도 낮은데 시민으로 잘 자라는 수가 너무 적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천 판사는 "10호 처분 기간도 2년밖에 안돼 아이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린다"며 "소년보호처분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교정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내보낼 수 있도록 보호기간을 늘리고 시설 확충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 과밀화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학습하고 재범하는 원인이 된다. 정 변호사는 "가출했다가 동전 턴 아이들이 엑스타시한 애들이랑 같은 시설에 섞이면 무섭다고 운다"며 "아이들이 제3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이 더 많아지도록 (비행 및 범죄) 수준별, 단계별로 나눠야 한다"고 했다.

승 연구위원은 "지금 13세가 흉악해진 건 다 우리 책임"이라며 "연령을 12세로 낮추는 게 걱정되면 우리 사회 공동체가 12세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범죄가 흉악해지지 않도록 선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년범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등 행동해야 아이들의 재범 위험성과 흉악범죄를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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