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①]中 쇼트트랙 김선태 감독 "매국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전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 이후 대회 초반 대한민국이 들끓었다. 전통의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개최국 중국에 유리한 판정으로 한국 선수들이 애꿎게 피해를 입어 메달이 무산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개회식에서 한복이 마치 중국 문화인 것처럼 등장해 심기가 불편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폭발했다.

비등한 비난 여론의 화살은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한국인 혹은 한국 출신 코치진에게도 쏟아졌다. 중국 대표팀 김선태 감독(46)과 안현수(37·러시아명 빅토르 안) 기술 코치다. 특히 이들이 석연치 않게 한국 선수들이 실격을 당한 남자 1000m에서 금, 은메달을 따낸 중국 선수들과 기뻐하는 모습에 많은 한국 팬들이 분개했다.

일각에서는 '매국노'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나왔다. 편파 판정 의혹 속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았던 김 감독이 세계 최강을 다투는 한국 쇼트트랙의 노하우를 중국에 빼돌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 감독이 당시 우수한 한국 코칭스태프를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 코치 영입과 평창올림픽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중국명 린샤오쥔)의 중국 귀화까지 김 감독의 작품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돈 때문에 중국에 팔려간 것이 아니냐는 날선 지적도 이어졌다.

하지만 김 감독은 대회 기간 말을 극도로 아꼈다. 5일 혼성 계주 2000m 금메달을 따낸 뒤 한국 취재진을 만나 질문에 답했지만 최대 논란이었던 남자 1000m 등 이후에는 아예 인터뷰를 삼갔다.

그런 김 감독이 입을 열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3주 만이자 대회가 막을 내린 이후 18일 만이다. 김 감독은 10일 서울 모처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나 베이징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저간의 사정과 비난, 오해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런쯔웨이가 김선태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김 감독은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고 며칠 동안 정말 많이 고민한 끝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현장을 취재한 기자로서 김 감독은 그닥 친절한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선수들을 먼저 취재진 앞으로 보냈고, 본인이 인터뷰에 나서도 말수가 많지 않았는데 답변을 해도 신중했다. 그런 김 감독이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먼저 김 감독은 "비난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의 라이벌인 중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부터 비난은 받아들일 마음은 있었다"는 것. 김 감독은 "대회 전부터 비난이 나와 안타까웠지만 원망보다 이해했다"면서 "안현수 코치와도 '최선을 다하고 비난 받을 거 있으면 받자'고 이야기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 이와 관련한 오해도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다. 김 감독이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최대 논란은 역시 편파 판정 의혹이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1000m에서 황대헌(강원도청), 이준서(한체대)가 애매한 레인 변경 반칙으로 실격됐는데 공교롭게도 중국 선수들이 어드밴스로 결승에 올라 금, 은메달을 따냈다. 결승에서도 1위로 들어온 샤올린 산도르 리우(헝가리)가 실격돼 논란이 됐다. 중국은 앞서 혼성 계주 2000m 준결승에서도 주자들의 '노 터치'에도 결승에 올랐고,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한국 선수들, 특히 평창올림픽 당시 지도했던 황대헌이 실격을 당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판정과 관련한 소신을 밝혔다.

황대헌(왼쪽)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석연찮은 판정 속에 실격을 당해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올랐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일단 김 감독은 "대헌이에 대해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라며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같이 운동하고 따랐던 선수라 (실격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1000m 때는 서로 경쟁하는 터라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지만 대헌이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축하한다고 얘기를 해줬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하지만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라 내가 '맞다, 아니다' 하는 얘기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코치진은 열심히 지도하고, 선수는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게 각자의 역할이고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혼성 계주 2000m 경기 후에도 "판정은 심판이 내리는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쇼트트랙의 특성상 판정의 빛과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당한 쪽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당시 중국도 판정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남자 1000m에서 한톈위가 실격을 당해 한국의 서이라(화성시청)가 구제를 받아 결국 동메달을 따냈는데 이 기사에 10만 개에 가까운 중국 네티즌들의 불만섞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김 감독은 "평창 때도 선수들에게 항상 '판정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니 얼음 위에서는 열심히 경기에 집중하자'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남자 1000m 결승 비디오 판독 당시 중국 선수들과 안현수 코치가 마치 유리한 판정을 기대하듯이 두 손으로 북을 치는 세리머니를 펼친 데 대해서도 김 감독은 "(리우가 런쯔웨이와 충돌하는) 몇몇 장면이 있다 보니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이었다"면서 "판정은 심판이 내리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경기 후 판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전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하지만 판정 논란 속에 남자 1000m 이후 김 감독과 안 코치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은 폭발했다. 김 감독은 "한국의 뉴스들을 잘 안 보려고 했지만 안 좋게 많이 나오더라"면서 "속상하긴 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은 물론 한국 대표팀의 인재들과 노하우를 중국에 넘겼다는 의혹에 이른바 '마상'(마음의 상처)이 심했다.

본인이 중국 대표팀을 맡게 된 상황부터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김 감독은 평창올림픽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사령탑이었다. 그러나 매년 계약이었고, 더군다나 평창올림픽 이후 김 감독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한국 쇼트트랙은 금메달 3개 등 만족할 만한 성적을 냈지만 김 감독은 대회 전 심석희(서울시청)의 폭행 피해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당장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김 감독은 "일각에서는 내가 평창올림픽 이후 바로 중국 대표팀을 맡게 된 줄 알고 있더라"면서 "그러나 2019년 봄 중국 육성팀 지도자 제의가 와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A 대표팀이 아니라 인라인스케이팅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전향한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역할이었다는 것. 이후 지도력을 인정 받아 여자 대표팀을 맡은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에야 정식으로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다른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안현수 코치는 물론 장비 담당, 트레이너 코치들은 따로 중국 대표팀과 계약을 맺었다"면서 "나도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이들을 처음 봤다"고 했다. 임효준의 귀화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올림픽까지만 계약이 돼 있는데 어떻게 이후까지 선수의 미래를 책임지고 귀화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이미 윗선에서 귀화가 결정된 이후에야 임효준과 연락이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 쇼트트랙의 노하우 유출 논란은 어떨까. 김 감독은 "쇼트트랙은 매년 기술과 전략이 바뀌고 발전한다"면서 "또 한국과 중국의 스타일이 달라 그대로 접목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김 감독은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게 지난해 10월이었다"면서 "대대적으로 무엇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크게는 기존 중국 대표팀의 훈련 방식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조언을 해줬다"고 답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감독(오른쪽)과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코치.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한국인 지도자가 외국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 당부했다. 김 감독은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 나섰지만 부상 등으로 출전하지 못해 메달이 없었다"면서 "성공한 선수가 아니었기에 국내에서 지도자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장비 담당 등을 하다 2004년 중국 창춘시의 유소년팀 지도자 제안이 와서 갔다"면서 "그러다 저우양(소치올림픽 여자 1500m 금) 등을 키워 지도력을 인정 받아 일본 및 중국 대표팀 지도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에 대한 논란이 안타깝다. 김 감독은 "평창 때도 힘겹게 훈련했기에 메달을 따낸 우리 선수들과 세리머니를 했다"면서 "중국 선수들 역시 엄청난 부담감 속에 자국 올림픽을 준비했고, 결과를 냈기에 함께 축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8년 전 내게 기회를 줬고, 또 맡은 역할을 열심히 했기에 한국 대표팀도 맡을 수 있었다"면서 "중국 대표팀에서 열심히 했던 것을 비난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뼈있는 말도 남겼다. 자신이 잘 해야 한국 쇼트트랙의 위상이 높아지고, 후배들도 혜택을 받는다는 것. 김 감독은 "중국에 와서 '대충 돈만 벌고 갔다'가 아니라 '열심히 잘 했다'는 말을 들어야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어 "중국도 쇼트트랙에 대한 자부심이 큰데 라이벌인 한국 지도자에게 대표팀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자리가 부족해 파벌 싸움이 벌어지는 한국 스포츠의 현실에 해외 지도자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쇼트트랙에도 전재수 헝가리 대표팀 코치가 베이징올림픽에서 활약했고, 전이경 전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도 있었다.

김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면서 각종 논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오히려 한국 쇼트트랙을 위해서 잘 된 일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어쨌든 내가 비난을 받게 됐지만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쇼트트랙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당분간 쉬면서 사랑하고 재미있는 쇼트트랙을 더 공부하겠다"고 비로소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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