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안정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집을 사기도, 보유하기도, 팔기도, 전셋집을 얻기도 어렵게 만들었다"며 "모든 국민들의 주거 수준 향상을 실현하겠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2년 넘게 지속됐던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경제가 요동치고,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돌아선 가운데 과연 새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주목된다.
민간 주도 전국 250만 호 공급 약속…실현될 수 있을까?
공급에 있어 윤 당선인 측은 임기 5년 동안 수도권에만 130만~150만 호를 공급하는 등 전국 250만호 이상 공급하겠다고 밝혀왔다. 이 가운데 민간 주도 공급으로만 200만 호가량을 공급할 계획이어서 민간 부문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특히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대폭 완화할 조짐이다. 정밀안전진단을 면제하고 구조안전성 가중치도 50%에서 30%로 하향조정해 재건축 판정을 손쉽게 받도록 '채찍'은 풀어두고,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을 완화하는 등 '당근'을 늘려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참여를 유도해 관련 공급 물량을 20~30% 확대한 47만 호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공공 주도 공급 50만 호를 '청년원가주택' 30만 호, '역세권 첫집주택' 20만 호로 꾸려 청년·신혼부부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점도 눈에 띈다.
또 입주자가 분양가의 20%만 우선 부담하고, 나머지 80%는 장기대출로 갚는 방식으로 역세권의 공공분양 주택을 손에 쥘 수 있는 '역세권 첫집주택'도 제공된다.
이를 위해 역세권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현행 300%에서 500%까지 상향 조정해 민간 개발사에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추가된 용적율의 50%를 기부채납 형태로 돌려받아 분양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러한 대규모 공급 계획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별 공급 계획이나, 세세한 재원 조달 방안 등 구체적인 이행 계획은 아직 언급되지 않아 과연 이러한 대규모 공급이 실현될 수 있느냐 여부에 물음표가 남는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윤 후보의 대선 공약에서 주택 공급 확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공급물량을 정해놓고 여기에 끼워맞춰서는 안된다"며 "각 지역별, 사업지별로 실제 가능한 물량에 기초해 공급을 확대하도록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 박효주 민생희망본부 선임간사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은 사실상 주택 가격의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며 "과도하게 가격이 오른 주택 시장이 다시 가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후보의 공약에서 세입자들에 대한 공약이 월세 세액공제율과 전세자금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소득공제율을 소폭 확대한 수준에 그친 점을 지적하면서 "세입자에 관해 내놓은 정책이 사실상 없는 수준이어서 세입자들의 주택 불안이 가중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LTV 등 대출 규제 대폭 완화 약속했지만…금리 인상 국면에 쉽지 않을 듯
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서 시장에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늘어난 주택 공급을 시장에서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적절할 금융·세제 조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쏟아진 물량을 구매할 여력을 갖추지 못해 가격이 급락하거나, 여유 자금을 갖춘 일부가 독점해 부동산 양극화 문제가 더 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특히 당선 직후 주택 공급을 확대하더라도 대단지 아파트는 인허가·착공부터 분양·준공에 이르기까지 최소 3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세금·대출 제도 개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출 규제의 경우 집을 구하기 위한 자산을 마련할 기간이 부족한 청년·신혼부부를 위해서다로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대폭 완화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년 등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완화해 실수요자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다른 구입자들도 지역에는 관계없이 70%로 단일화하되 다주택자는 보유주택 수에 따라 30%, 40%로 LTV 상한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특히 신혼부부에게는 4억 원 한도에서 3년 동안, 출산한 경우 5년까지 저금리로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 지원을 돕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게는 3억 원 한도로 3년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기조에도 대외적 시장 조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오는 15~16일쯤 정책금리를 0.25%p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금리 인상 폭이 기존 예상보다는 낮아졌지만, '포스트 코로나'가 가시화되고 에너지·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격화되면서 금리 인상 압력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지금 부동산 가격은 0.2% 기준금리 시절에 형성된 가격인데, 2.0% 정도로 금리가 4배가량 오르면 완전히 다른 시장 환경이 펼쳐질 것"이라며 "특히 지난해 전세 시장이 정점을 찍었는데,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면 역전세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다주택자는 역전세 현상이 오면 결국 물량을 팔 수밖에 없고, 여기에 정부가 주택 공급까지 늘리면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가 계속될 수 있다"며 "시장 가격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거시 지표들과 정부 정책이 격렬하게 충돌할 것이고, 이 때문에 정부의 공급·대출 정책의 효과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건은 세제 개편…공시가격 현실화 멈춰세우고 종부세는 사실상 무력화
강원대 정준호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을 공급하려고 해도 금리가 올라 대출 지원이 원활하지 않으면 공급한 주택에 사람을 채워 넣을 수 없게 된다"며 "결국 차기 정부가 가장 먼저 세제 개편부터 손을 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의 세제 개편 공약을 살펴보면, 사실상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했던 부동산 세제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난폭한 부동산 정책'의 대표적 실정이라고 보고 올해 공시가격부터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공약을 들 수 있다. 공시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바람에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 재산세와 과세 대상이 같다며 '이중 과세'라고 반발해온 종합부동산세는 장기적으로 재산세와 아예 통합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1주택자의 세율을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 수준까지 낮추고, 1주택 장기 보유자는 연령과 상관없이 주택 매각·상속 시점까지 세금 납부를 늦추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또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양도세 중과 적용을 최대 2년간 한시적으로 배제해서 다주택자의 보유 주택을 매각하도록 유도하고, 이후 장기적으로는 부동산세제를 개편하면서 중과세 정책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취득세의 경우 1주택자·비조정지역 2주택자에게는 합산 세액이 직전 연도의 50%를 넘지 않도록 세부담 상한 비율을 낮추고, 조정지역 2주택자·3주택자에 대해서도 세 부담 상한을 현행 300%에서 200%로 낮추기로 했다. 특히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아예 취득세를 면제하거나 1%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파격 혜택도 약속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국회를 통해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보다 당장 정부가 시행령 등을 통해 손을 댈 수 있는 공정시장가액비율 같은 곳부터 손을 댈 가능성이 높다"며 "문재인 정부 기간 어렵게 추진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이 효과를 보기 전에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