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화성의 한 공사현장은 적막했다.
높이 10m, 면적 60평 남짓한 창고 건물. 그 옆으로 시동 꺼진 크레인이 멈춰 서있었다.
불과 사흘 전 이곳에서 일용직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업재해였다. 옥상에서 지붕공사를 마친 두 사람은 크레인 견인줄에 의지해 내려오다 4m 높이에서 떨어졌다. 크레인 옆 흙바닥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사고 당시를 짐작하게 했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곳은 예외다. 적용 기준(공사비 50억 원 이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산업재해 35건, 42명 사망
반면 기준에 미달하는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26건이 발생해 노동자 27명이 사망했다.
지난 7일 경기도 화성의 한 상가 공사현장에서도 지게차를 몰던 운전자(60)가 숨졌다. 운전자는 작업을 마치고 경사로에서 후진하던 중 벽면에 부딪쳤고, 그 충격으로 지게차가 옆으로 쓰러지며 운전자를 덮쳤다.
이곳은 공사비용이 50억 원 미만인 건설현장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은 2년 뒤에나 가능하다. 영세한 만큼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현장 사망 10건 중 7건은 '50억·50인 미만'에서
그러나 산업재해 사망 사고의 70%는 중대재해법 처벌망에서 벗어나 있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는 828명. 특히 안전사고가 빈번한 건설현장에서 417명이 숨졌는데, 이 중 71.5%는 공사비용이 50억 원 미만인 현장이었다.
사업장 규모를 놓고 봤을 때도 지난해 일반사업장에서 숨진 411명 중 78%는 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인 중소사업장에서 근무했다.
노동계는 이미 중대재해법을 논의할 당시부터 '위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손진우 상임활동가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면, 가장 취약계층부터 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취약계층인 영세 사업장을 가장 먼저 배제하고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을 위해 재정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며 "위험시설을 개선할 수 있게 교체 비용을 지원하고, 무료 기술지도와 컨설팅 등 안전관리 역량 향상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는 규모따라 발생하지 않아"
전문가들은 사업장이나 인원 등 규모와 산업재해는 별개라고 선을 긋는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등 소규모 사업장에선 자칫 편파적인 법 적용 등으로 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며 "사업장이나 인원의 규모에 따라서 법 적용에 차별을 두기 시작하면 산업재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노동부나 감독기관도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장과 아닌 곳을 대하는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 같다"며 "소규모 사업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며, 이것이 2년 뒤 시행될 중대재해법을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고 짚었다.
손 상임활동가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로 기업들이 유명 로펌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업장이 크든 작든 노동현장의 목소리부터 귀를 기울여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