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폭락' 루블화 받게 된 기업들 속앓이

루블화. 연합뉴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비우호국가' 지정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손해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9일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러시아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대만, 우크라이나 48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채무를 지고 있는 러시아 기업 등은 외화 표시 채권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지불해도 된다는 정부령을 발표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관련,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에 대한 제재 의미다.

문제는 루블화 환율이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 이후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CNN은 지난 7일(현지시간) "현재 미국 달러 당 루블의 가치가 155루블 선으로 올라 거래되고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보통 달러당 70~80루블로 거래됐다. 연초와 비교하면 루블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90%나 하락한 셈"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루블화 가치가 계속 떨어져 러시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에 놓이면 자칫 국내 기업들이 아예 수출대금 등을 떼일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당장 기업들은 돈을 받은 뒤 생길 '환차손' 위험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에 진출한 법인 매출은 결국 달러로 환산해야 한다"며 "루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손해는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이같은 조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을 포함해 40여 개의 기업이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물론 가전업계의 경우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로 내수용 물량을 담당하고 있는 데다가 현지화로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도 그리 크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폰 등 러시아행 수출제품 선적을 최근 중단했다. LG전자는 러시아 수출 물량이 거의 없고 대부분 현지 생산에 의존한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전으로 흘러가거나, 추가 제재가 나올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측에서 계속해서 경제에 안 좋은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폭락 중인 러시아 루블화. 연합뉴스
또 추가 제재가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에 미칠 '이미지 타격'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현재 러시아 스마트폰 및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다.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LG전자와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현대차 역시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기아 20만 5801대, 현대차 17만 1811대를 판매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로부터 사실상의 '보복 제재'를 받고 있지만 러시아에 우호적인 중국의 기업은 각종 제재에서 면제된 상황이다. 기회를 틈타 중국 기업들이 점유율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게 현대차 등 한국 제품과 일본 제품 등인데 일본도 같이 제재를 하고 있어서 중국 제품이 대체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어려움은 여러모로 가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현대차 공장은 지난 1일부터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당초 현대차는 여성의 날 연휴인 6~8일이 지난 뒤 9일부터 공장을 재가동할 계획이었으나 부품 수급 문제로 재가동 시점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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