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부조리에 고통 받는 여성의 반문 '레벤느망'

외화 '레벤느망'(감독 오드리 디완)

외화 '레벤느망' 스틸컷.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문제를 단순히 두 개의 질문으로 나누고, 누군가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한 채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존재와 한 가지 조건만을 넣으면 폭력과 비난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존재에게로 향한다. 여기서 한 여성의 임신 중절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을 담은 영화 '레벤느망'은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반문한다.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 안(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은 예기치 못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낳으면 미혼모가 되고,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 게 안 앞에 놓인 현실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안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끝까지 가기로 한다.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 오드리 디완 감독의 작품 '레벤느망'은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촉망받던 미래를 빼앗긴 대학생 안이 시대의 금기로 여겨지던 일을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레벤느망'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아니 에르노의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록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가장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에 관한 기록을 진실하면서도 생생하게 스크린에 옮겼다.
 
외화 '레벤느망' 스틸컷.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레벤느망'은 시대의 부조리와 억압으로 고통받은 여성의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목도하고자 하는, 모두가 봐야 할 영화다. 임신 주차별로 안의 상황을 그려내며 그의 불안, 두려움, 혼돈, 공포, 슬픔 등은 점차 진해진다. 임신 주차가 늘어날수록 주인공 안도, 그녀를 보는 관객도 긴장과 불안, 공포가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선택하든 고통과 슬픔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존재를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법, 한쪽에만 부당하게 모든 짐을 짊어지게 만드는 사회가 어떻게 한 존재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고통받게 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안과 안의 세상에서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게 만든다.
 
스물셋 나이에 임신 확인서를 받아든 안은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혼자 해결하려 하고,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 당시 여성에게 임신은 말 그대로 '세상이 끝나는 일'이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여성에게서 모든 자유와 선택지를 강탈하려는 사회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에게 '범법자' '살인자' 등의 주홍글씨를 찍는다.
 
안의 주변에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선택권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 앞에 여러 가지 선택지는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선택권을 당사자가 아닌 사회가 갖고 있는 이상한 상황을 두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부조리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선택권을 박탈당한 안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외화 '레벤느망' 스틸컷.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이런 부조리한 사회에서 여성은 홀로 될 수밖에 없다.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 법도, 사회도, 사람들도 안을 공동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바깥으로 밀려난 안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법 바깥에 위치한 위험스러운 선택지 단 하나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선택지 말이다.
 
생명을 살리면 안의 삶은 끝나고, 생명이 죽으면 안의 삶이 살아나는 두 개의 비극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안이다. 하지만 두 개의 선택지밖에 주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정해 놓은 선택지를 선택하게 만든 것은 바로 사회다. 아이를 선택하면 아이를 잉태한 존재의 삶을 포기하게 한 사회에 대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자신의 존재 안에 담아낸 채 선택을 강요하게끔 만든 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은 없다. 안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는 매우 폭력적이다.
 
누군가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고, 하나의 선택지만을 고르게끔 강요하는 사회를 우리는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어떤 단어와 어떤 존재를 대입하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여성과 임신 중절에 관해서는 당사자의 선택을 박탈하는 게 당연하고 옳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갖는 폭력성이 한 존재를 얼마나 고통받게 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그렇기에 안의 얼굴, 안의 발걸음, 안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순간순간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두렵게 다가온다.
 
안의 선택을 바라보며 홀로 견뎌내야 했던 사건, 오랜 시간 고통받으며 숨겨왔던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 이의 용기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사건의 첫 줄을 어떻게 적어나갔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안과 아니 에르노의 용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마주할수록 우리는 안과 감독, 아니 에르노가 던진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안이 임신 중절을 원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에서 누군가는 임신 중절의 불법 여부를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남자에 대한 분노를 드러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낙태된 태아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들이다. 과연 여기서 우리는 얼마나 당사자를 바라볼까, 우리는 낙태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모습에서 과연 여성이 아닌 다른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등을 생각해야 한다.
 
안을 비난하기 전에, 금지된 일을 했기에 나쁘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금지당하게 된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요구했고, 어떤 선택을 박탈했는지, 사회와 법이 '금지'를 규정하기 위해 어떤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일을 벌였는지 들여다보고 물어야만 한다.
 
외화 '레벤느망' 스틸컷.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아니 에르노는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아니 에르노의 말은 영화 속 안의 얼굴에 겹쳐지면서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보지 않으려 했던 곳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레벤느망'을 보고 안과 안의 선택을 비난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사회의 폭력을 개인이 반복하는 데 그친다. 안을 당시의 시선 안에서 불법적인 선택을 하게끔 몰아세운 '법'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법은 과연 정당한가 등을 물어야 한다. 그 법으로 인해 여성은 무엇을 잃어야 했는지, 무엇이 여성을 법의 바깥으로 몰아냈는지 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 임신 중절이 불법이던 시대에 벌어졌던 일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현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지금도 임신 중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여전하고, 이로 인해 고통받고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자신과 무관한 선택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레벤느망'을 보면 임신 중절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만 볼 수 없음을 머리로 깨닫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결코 안의 얼굴을 뇌리에서 지울 수는 없게 된다. 그럼에도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가 걸려 안의 선택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꺼림칙한 무언가가 내 안에 맴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질문을 던져 나가면 된다.
 
임신 중절과 여성이라는 단어를 떼어 놓고, 사회가 한 존재에게서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권을 박탈한 채, "다수가 옳다고 여긴다"는 이유로 한 존재를 억압하고 고통받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바꾼다면, 과연 우리는 이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100분 상영, 3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레벤느망' 메인 포스터. ㈜왓챠·㈜영화특별시SM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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